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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다 유키무라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사카 여름의 진(8) 난공불락의 오사카성 함락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오사카 여름의 진(8) 난공불락의 오사카성 함락 게이쵸 20년(1615년) 5월 8일, 오사카성이 불길에 싸여 함락 되어, 도요토미 히데요리, 요도도노 모자가 할복해 여기서 도요토미 가문은 멸망 했고, 겨울과 여름의 두 번에 건넌 '오사카의 진'은 종결했습니다. 어제 정오부터 시작된 오사카 여름의 진의 오사카성 총공격(.오사카성 총공격) 이 때에 사나다 유키무라 군이 마쓰다이라 타다나오(松平忠直)군을 돌파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본진에 들어가 '하마터면' 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타다나오도 사나다 보다는 오사카성 공격에 중점을 두었다는 것입니다. 마쓰다이라 부대는 쿄우하시구치(京橋口)에서 니노마루(二の丸)로 들어가, 혼마루(本丸)에 제일 먼저 도착했습니다. 도쿠가와 측이..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사카 여름의 진(7) 오사카성 총공격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오사카 여름의 진(7) 오사카성 총공격 게이쵸 20년((1615년) 5월 7일, 오사카여름의 진에서 도쿠가와의 오사카성 총공격이 개시되었습니다. 전날의 도묘지, 혼다의 전투, 카와치, 와카에 전투, 야오 전투에서 야전을 전개한 도요토미 측은 오사카성으로 퇴각합니다. 그 후, 도쿠가와 측은 대군으로 오사카성을 포위합니다. 이 시점에서 도쿠가와 측은 15만, 도요토미 측은 5만 5천의 군세였다고 합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본대는 텐노지구치(天王寺口)에서, 히데타다 부대는 오카야마구치(岡山口)에서 총공격을 하는 일을 결정해 텐노지구치에는 혼다 타다토모(本多忠朝) 오카야마구치에는 마에다 토시츠네(前田利常)가 각각 선봉을 맡습니다. 이에 대하는 도요토미 측은 텐노지구치를 사나다 유키무라(真田..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사카 여름의 진(2) 오사카 여름의 진, 개전하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오사카 여름의 진(2) 오사카 여름의 진, 개전하다 겐나 원년(게이쵸 20년 1615년) 5월 6일, 오오사카여름의 진이 개전했습니다. 오사카 겨울의 진에서 11월 19일에 일어난 최초의 충돌로, 도요토미 측은 에타카사키(穢多崎) 성채를 빼앗겨 26일에는 이마부쿠, 시기노 전투(시기노, 이마부쿠 전투) 29일에는 바쿠로우가후치, 노다, 후쿠시마 전투(바쿠로우가후치, 노다, 후쿠시마 전투)에서도 성채를 빼앗겨 버렸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러한 오사카성주변 국지전의 승리를 보고, 포위망을 좁혀 가려고합니다. 그리고 12월에 들어가 본진을 차우스산(茶臼山)으로 옮깁니다. 그리고 4일에 벌어진 사나다마루 전투(사나다마루 공방전)과 5일의 타니쵸구(谷町口) 전투에서도 전과를 거두지 못하..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사카 겨울의 진(7) 사나다마루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오사카 겨울의 진(7) 사나다마루 공방전 게이쵸 19년(1614년) 12월 4일, 최초부터 도요토미측이 불리했던 오사카 겨울의 진 중에서, 유일하게 도요토미 측이 도쿠가와 측에게 압승한 사나다마루 공방전이 있던 날입니다. 오사카 겨울의 진에서 11월 19일에 일어난 최초의 충돌로, 도요토미 측은 에타카사키(穢多崎) 성채를 빼앗겨 26일에는 이마부쿠, 시기노 전투(시기노, 이마부쿠 전투) 29일에는 바쿠로우가후치, 노다, 후쿠시마 전투(바쿠로우가후치, 노다, 후쿠시마 전투)에서도 성채를 빼앗겨 버렸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러한 오사카성주변 국지전의 승리를 보고, 포위망을 좁혀 가려고합니다. 그리고 12월에 들어가 본진을 차우스산(茶臼山)으로 옮깁니다. 그리고 게이쵸 19년(161..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사카 겨울의 진(1) 오사카성의 군의, 사나다의 비책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오사카 겨울의 진(1) 오사카성의 군의, 사나다의 비책 게이쵸 19년(1614년) 10월 10일, 사나다유키무라가 오오사카성에 입성해, 오사카성의 군의에 참것했습니다. 다음날인 10월 11일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슨푸에서 출진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움직임을 알게 된 히데요시의 군의가 있었습니다. 사나다 유키무라는 황금 2백매, 은3 백관, 50만석의 영주라고 하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오사카성 에 들어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리는 아버지가 남긴 수많은 유산은 있지만, 정작 전투를 할 줄 아는 무장은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서군의 무장들은 대부분 죽거나 료닌이 되었었지요. 그래서 오사카 겨울의 진의 전운에 히데요시 은고의 무장들이 구름처럼 몰려들 것이라는 히데요리의 기대와 다르게,..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사나다 유키무라, 쿠도산을 탈출하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사나다 유키무라, 쿠도산을 탈출하다 게이쵸 19년(1614년) 10월 9일, 세키가하라 전투의 뒤, 쿠도산(九度山)에 추방되고 있던 사나다 유키무라(真田幸村)가 탈출해 오사카성으로 향했습니다. 게이쵸5년(1600년) 9월 15일의 세키가하라 전투는 반나절만에 결착납니다. 하지만 이때, 아이즈의 우에스기 정벌로 향한 사나다 마사유키, 노부유키, 유키무라 부자 3명입니다만, 시모우치 이누부시의 숙소에서 미쓰나리의 밀서를 받은 뒤에, 형인 노부유키는 동군으로 붙어 그대로 도쿠가와 히데타다(徳川秀忠)에 합류하고, 아버지 마사유키와 동생 유키무라는 서군에 붙어 거성인 시나노 우에다성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후, 오야마에서 회군한 이야에스의 동군 중, 히데타다는 나카센도우에서 서쪽으로 향해 진군..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세키가하라 전투(7) 신출귀몰한 시나다, 우에다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세키가하라 전투(7) 신출귀몰한 시나다, 우에다성 공방전 게이쵸5년(1600년) 9월 2일, 세키가하라 전투의 전초전의 하나. 사나다 마사유키, 유키무라 부자가 항복을 권고하며 우에다성(上田城)을 포위한 도쿠가와 히데타다(徳川秀忠)에게서 끝까지 성을 지킨 우에다성 공방전이 있었습니다. 7월에 들어가 본격적인 세키가하라가 시작 됩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후, 중진인 마에다 토시이에도 죽어 도요토미 가문 내의 균열(히데요시 유언)이 점차 심해집니다. 그런 가운데, 거두의 죽음으로 따라 오대로중에서도 필두가 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종종의 상경 요청에 응하지 않는 우에스기 카게카츠에 모반의 혐의를 덮어 씌워 아이즈 정벌을 결행하게 됩니다.(카게카츠의 상경 거부) 이렇게 되어 부재중..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사나다 가문이 둘로 나눠어 참전하다, 이누부시의 이별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사나다 가문이 둘로 나눠어 참전하다, 이누부시의 이별 게이쵸5년(1600년) 7월 21일, 이시다 미쓰나리에게 밀서를 받은 사나다 마사유키(真田昌幸), 노부유키(信幸), 유키무라(幸村) 부자가, 시모쓰게(下野) 이누부시(犬伏)에서 논의한 결과, 사나다 가문이 동서로 나누어지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이누부시의 이별(犬伏の別れ)'입니다. 게이쵸 3년(1598년) 8월 18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유언에서 오대로와 오봉행을 임명하고, 불과 6세인 히데요리의 장래를 맡기고 죽음을 맞이 했습니다.(히데요시의 유언) 그러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 때 벌써 60세에 가까운 나이, 그도 이제 천하를 손에 넣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어쨌든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다와라 정벌의 서막, 호조의 나구루미성 탈취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오다와라 정벌의 서막, 호조의 나구루미성 탈취 덴쇼 17년(1589년) 10월 23일, 호조 우지나오(北条氏直)의 가신으로 누마타성(沼田城)을 맡는 이노마타 쿠니노리(猪俣邦憲)가 사나다의 나구루미성(名胡桃城)을 탈취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원래 가이의 다케다의 가신이었던 사나다 마사유키(真田昌幸)는 덴모쿠산에서 다케다 가쓰요리가 할복(다케다가 멸망하다) 해 다케다가 멸망 한 후, 다케다의 옛 영토는 승자인 오다 노부나가의 것이 될 것이라 생각해 오다의 가신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노부나가가 불과 3개월 후의 덴쇼 10년 6월에, 혼노지에서 쓰러져 버립니다.(혼노지의 변) 그로 인해 구 다케다령은 눈 깜짝할 사이에 미카와의 도쿠가와,사가미의 호조, 에치고의 우에스기 3강의 표적이되..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닌자 인물편; 사나다 가문의 양대 닌자, 이데우라 모리키요 일본 전국시대 닌자 인물편;사나다 가문의 양대 닌자, 이데우라 모리키요 이데우라 모리키요(出浦盛清)는 사나다(真田)의 닌자입니다. 요코타니 사콘(横谷左近)과 함께 아즈마시노비중(吾妻忍び衆)을 이끈 사나다 가문의 양대 닌자입니다. 다케다가의 아래서 코슈의 닌자 슷파를 이끌었다고 합니다. 적의 성에 부하 닌자들을 파견할 때 본인이 먼저 탐색을 했었습니다. 또 신겐과 겐신의 전투인 '제 4차 가와나카지마 전투'에서 겐신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역할을 맡았었다고도 합니다. 다케다가 멸망한 뒤는 모리 나가요시를 섬기다, 뒤에 사나다 가문을 섬기고 우에히라성(上平城)의 성주를 맡았다고 합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