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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나카지마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제 5차 가와나카지마 전투, 시오자키 대진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제 5차 가와나카지마 전투, 시오자키 대진 에이로쿠7년(1564년) 가이의 다케다 신겐과 에치고의 우에스기 겐신의 사이에 제차 가와나카지마 전투 시오자키 대진(塩崎の対陣)이 발발했습니다. 제4차 가와나카지마 전투(하치만바라 전투) 이전에 관동관령이 된 겐신은 호조가와도 적대해야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에이로쿠7년(1564년) 신겐은 무츠 남부의 모리우지(芦名盛)에게 겐신의 배후를 찌르기를 요청하고 그 사이에 시나노와 에치고의 국경 부근에 있는 우에스기측의 성채를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이에 겐신은 관동의 호조와의 전투를 중단하고 에치고로 돌아갑니다. 번번이 자신의 천도를 막는 신겐에 분노한 겐신은 '다케다 하루노부 악행지사' 라는 원문(願文)을 각지의 절에 봉납하고, 신겐 토벌의 의..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신겐과 겐신의 격돌! 제 4차 가와나카지마 전투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신겐과 겐신의 격돌! 제 4차 가와나카지마 전투 엔로쿠4년(1561년) 다케다 신겐과 우에스기 겐신의 대격돌, 전국시대 최고 전투 중 하나인 제4차 가와나카지마 전투인 하치만바라의 전투(八幡原の戦い)가 있었습니다. 북시나노의 사이(犀)강과 치쿠마(千曲)강의 합류하는 장소인 '가와나카지마' 신겐과 겐신은 이 가와나카지마에서 총 5 회의 전투를 했습니다. 그 중에서 본진으로 쳐 들어온 신겐에, 말을 탄 겐신이 손에 가진 군검으로 베고, 이를 부채로 막는 신겐의 모습이 등장하는 가장 유명한 전투가 이 4번째 전투입니다. 그냥 가와나카지마 전투라고 하면 이 전투를 말하는 것입니다. 겐신의 부대는 1만 3천의 군세를 이끌고 사이죠산(妻女山)에 진을 치고, 신겐은 2만의 군세를 카이츠성(海津..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제 3차 가와나카지마 전투; 우에노하라 전투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제 3차 가와나카지마 전투; 우에노하라 전투 코우지 3년(1557년) 가이의 다케다 신겐과 에치고의 우에스기 겐신이 다시 한번 격돌한 3차 가와나카지마 전투인 우에노하라 전투(上野原の戦い)가 있었습니다. 제 2차 가와나카지마의 전투는 강화(사이카와 전투)로 끝났었지요. 이 이후 겐신은 뜬금포를 발사하고 출가를 결의하는 반면 신겐은 강화를 찢어, 시나노 북부에의 진공을 재개합니다. 게다가 겐신의 가신인 오오쿠마 토모히데(大熊朝秀)와 내통해 엣츄(越中)에서 반란을 일으키게 합니다. 오오쿠마 엣츄의 난은 신속하게 진압되고 실패에 끝납니다. 이어서 신겐은 앞의 강화의 조건으로 영지가 안도되고 있던 우에스기측의 고쿠진들에게도 반란을 종용해 겐신의 세력에 혼란을 증가시킵니다. 가족의 배반과 신..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제 2차 가와나카지마 전투; 사이카와 전투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제 2차 가와나카지마 전투; 사이카와 전투 코우지 원년(1555년) 시나노의 사이카와강을 사이에 두어 대치하고 있던 우에스기 겐신과 다케다 신겐의 군이 격돌하였으니, 제2차 가와나카지마 전투라고 말해지는 '사이카와의 전투'가 있었습니다. 제 1차 가와나카지마 전투(후세 전투)가 끝나고 신겐은 스루가의 이마가와 요시모토와 사가미의 호조 우지야스와 각각의 아들, 딸끼리의 혼인 관계에 의한 '키요스 삼국 동맹(甲相駿 三国同盟)'을 맺습니다. 이것으로, 염려 없이 겐신과 싸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겐신의 가신으로 키타죠성(北条城) 성주인 키타죠 타카히로(北条高広)에 밀사를 보내 반란을 권유합니다. 신겐의 권유에 응한 타카히로는, 12월에 군사를 일으키지요. 이것이 바로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제1차 가와나카지마 전투 후세 전투 일본 전국시대;제1차 가와나카지마 전투 후세 전투 텐몬 22년(1553년) 사이강을 건너 후세(布施)에 포진 하고 있던 우에스기 겐신의 군이, 다케다 신겐군의 선봉군을 격퇴했으니, 이것이 바로 제1차 가와나카지마 전투의 후세 전투 입니다. 겐신과 신겐은 최고의 라이벌 답게 치열한 가와나카지마 전투를 벌였는데, 이 가와나카지마는 총 5회에 걸쳐 벌어지지만, 제일 치열하고 1:1 대결마저 있는 제 4차 전투를 일반적으로 가와나카지마전투로 간주합니다. 아무튼 제1차와 제2차의 전투 사이에 이번에 다룰 후세 전투가 일어났습니다. 에치고의 우에스기 겐신(당시는 나가오 가게토라)을 의지한 요시키요는 카츠라오성을 탈환합니다. 이것이 제1차 가와나카지마의 전투의 서막, 사라시나 야와타 전투입니다. 겐신의 개입을 안 신..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제1차 가와나카지마 전투의 전초전 시라시나 야와타 전투 일본 전국시대;제1차 가와나카지마 전투의 전초전시라시나 야와타 전투 텐몬 22년(1553년) 다케다 신겐에게 카츠라오성을 빼앗긴 무라카미 요시키요가 신겐의 진을 습격한 사라시나 야와타 전투(更級八幡の戦い)가 있었습니다. 이를 일반적으로 제1차 가와나카지마 전투로 간주하는 듯 합니다. 에치고의 수호인 우에스기가 부하 수호대 나가오 다메카게가 하극상으로 우에스기의 실권을 빼앗아 에치고의 지배에 나서지요. 다메카게의 사후 형제 사이 상속자 분쟁이 일어나고, 거기서 승리해 카스가야마성(春日山城)에 들어온 것이 바로 나가오 가게토라, 후의 우에스기 겐신입니다. 그러나 겐신이 상속한 무렵 아직 에치고의 북쪽에는 아가키타슈(揚北衆)라고 불리는 고쿠진들이 독자적으로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분 상태가 계속 되고 있어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