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속 역사이야기; 쇼군 토탈워2
카와코에 야전
쇼군 토탈워2에는 'Historical Battle'이라 해서 역사적인 전투들을 재현해 놓은 것이 있습니다. 그 전투들을 포스팅 해보려 합니다. 카와코에 야전에 대해 따로 포스팅 해 놓은 것은 아래의 링크를 눌러 주세요.
처음에는 간단히 카와코에 야전에 대해서 설명이 쓰여 있는데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카와코에 야전(1545년)은 호조 가문이 빠른 속도와 은밀성을 위해 무거운 갑옷을 벗고, 밤에 포위해 공격해 오는 우에스기 가문을 성공적으로 물리친 전투이다.
그 다음에서는 이례 그렇듯이 각 진영의 장수들에 대해 보여주는 로딩 화면입니다. 호조 측에서는 호조 츠나시게와 원군으로 호조 우지야스가, 공격하는 우에스기와 관령 측에서는 관동관령 야마노우치 우에스기 노리마사, 원래 카와코에성의 주인이였던 오기가야츠 우에스기 토모사다, 코가쿠보 4대 아시카가 하루우지, 이마가와의 중흥기를 이끌었던 이마가와 우지치카가 있습니다.
카와코에성을 지키는 것은 호조 츠나시게였습니다. 호조 츠나시게의 아버지인 쿠시마 마사나리는 이마가와의 가신이었는데 가문에 의해 살해당합니다. 이에 츠나시게는 호조 가문으로 도망쳐, 그 실력을 인정받아 데릴 사위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3천이 채 되지 않는 병사로 오기가야츠 우에스기 토모사다에게 빼앗은 카와고에성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오기가야츠 우에스기 가문을 어린 나이에 이어 받은 오기가야츠 우에스기 토모사다는 그것을 기회로 쳐들어 온 호조 세력에게 카와고에성을 빼앗기고 맙니다. 그는 이 성을 회복하기 위해 오랬동안 항쟁해 왔던 야마노우치 우에스기 가문과 화목을 맺고 스루가의 이마가와, 코가쿠보까지 연합해 무려 8만 대군을 이끌고 카와고에성을 포위합니다.
야마노우치 우에스기 노리마사는 오기가야츠 우에스기 토모사다의 요청을 받아 오랜 양 우에스기 가문의 항쟁을 끝내고, 호조 가문을 공격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 전투에서 패배하고 세력이 기울어져, 후에 호조 우지야쓰에게 쫓겨나 나가오 가케토라(후의 우에스기 겐신)에게 의탁합니다.
4대 코가쿠보인 아시카가 하루우지도 이번 전투에 참여했습니다. 코가쿠보란, 기나이의 교토에 자리 잡은 아시카가 가문이 막부를 열게되자, 그들은 가마쿠라를 시작으로한 관동에의 영향력을 잃을 것이라 우려해 코가쿠보를 만들고 아시카가의 분가에게 그것을 맡깁니다. 시간이 지나며 중앙의 아시카가 막부의 영향력이 줄어들자, 코가쿠보는 독자 세력화 했습니다. 호조 가문을 출발시킨 호조 소운 자체가 아시카가의 분가가 맡은 호리코시 쿠보를 물리치고 세워진데다, 관동의 패자가 되려하는 호조 가문의 모습은 하루우지에게 위협으로 다가온 것입니다.
이마가와 가문이라 하면 보통 이마가와 요시토모를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마가와 가문의 진정한 전성기는 그 전 당주 이마가와 우지치카 때였습니다. 이마가와 우지치카의 세력은 오와리, 스루가 그리고 관동에도 세력을 넓혀 가 호조 가문과는 적대관계였습니다. 그역시 이번 전투에 참가해 호조 가문 타파를 도모했습니다.
이로서 카와고에성을 공격하는 군세는 무려 8만이었습니다. 호조 우지야스는 단 8천의 군세를 이끌고 원조를 위해 도착했습니다. 거의 10배에 달하는 적을 앞에 둔 호조군에게 희망은 없어 보였습니다. 그냥 싸워봐야 별 도리가 없었다고 생각한 그는 일단 죄를 뉘우친다며 편지를 보내 방심을 유발하고 8천의 군세를 넷으로 나누어, 이 큰 전력차로 방심하고 있던 연합군에 기습을 가하려 합니다. 12시가 되자 우지야스는 병사들의 갑옷을 벗게 해 몸을 가볍게 한 뒤, 연합군 본진을 향해 돌격했습니다.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연합군은 크게 당황했습니다. 심지어 오기가야츠 우에스기 토모사다는 여기서 전사해, 오기가야츠 우에스기 가문은 대가 끊기게 되었습니다. 이 소란을 듣고 성병도 성안에서 호응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연합군은 1만 3천여명의 전사자를 내고 패배하고, 호조 가문은 관동에서 그 이름을 알리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