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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쵸쇼카베 모토치카의 아키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쵸쇼카베 모토치카의 아키성 공방전


 에이로쿠 12년(1569년) 토사의 통일을 노리는 쵸쇼카베 모토치카가 토사 동부를 지배하던 아키 쿠니토라(安芸国虎)를 공격해 아키성이 점령당했습니다. 



당시 토사 상황



 오다 노부나가가 기어이 이나바야마성을 손에 넣었을 때(이나바야마 공방전), 서쪽에서는 모리와 오오토모가 영지를 빼앗고 있었습니다.(모지성 공방전) 이 군웅할거의 엔로쿠(1558~69년)의 후반무렵 시코쿠 토사에서는 맹장 쵸쇼카베 모토치카(長宗我部元親)가 파죽지세로 세력을 확대하고 있었습니다. 토사의 중앙부를 거의 수중에 넣은 모토치카는 다음으로 동부의 아키를 목적으로 정합니다. 에이로쿠 12년(1569년) 무렵 모토치카는 토사 아키성(安芸城)을 본거지로 하는 아키 쿠니토라에게 은근히 항복을 재촉 하는 편지를 보냅니다. 그러나 아키가는 200년 이상 영지에 뿌리를 내린 유서깊은 집안, 단 1통의 편지로 순조롭게 항복할 수는 없었습니다. 편지의 대답을 받지 못하자 모토치카는 당당히 '아키 토벌'을 선언합니다.


 7월 중순 모토치카는 7천의 군사를 인솔해 아키성에 진군합니다. 물론 토사의 쿠니토라도 가만이 포위당하는 것을 지켜볼 리 없고, 요격하러 나옵니다. 최초의 충돌은 화살 시나가레산(矢流山)에서 일어났습니다. 이 전투는 대승까지는 아니지만 초소카베군이 아키군에 우세해 아키성으로 몰아넣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모토치카의 파죽지세가 부활합니다. 아키성의 앞에 있는 신죠성(新荘城), 아나나이성(安内城) 등의 지성을 차례차례로 공략해 서서히 쿠니토라를 궁지에 몰아넣어 갑니다. 7월 말, 초쇼카베군은 아키성을 포위합니다. 그러나 모토치카는 단순히 성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죠테이지(浄貞寺) 전경



  모토치카가 이전부터 걸어 둔 계략의 성과가 이제서야 서서히 나오기 시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토치카는 이번 출진을 하기 전부터 적의 정세를 살펴, 쿠니토라에 불만을 가지는 신하의 사람들에게 뇌물을 뿌려, 이 쪽 편으로 내통 하듯 권유를 하고 있었습니다. 내통자가 성의 방비 상황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자, 8월에 모토치카는 단번에 아키성에 총공격을 실시합니다. 결국 아키성은 함락 되었습니다. 아키가 당주 쿠니토라는 성벽아래에 있는 죠테이지(浄貞寺)에서 할복해 200여년에 걸쳐 아키를 지배해 온 아키가는 여기서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이 후도 계속해 토사의 각지를 공략한 모토치카는 덴쇼 3년(1575년) 염원의 토사 통일을 완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