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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오우치가의 멸망, 오오우치 요시나가 할복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오우치가의 멸망, 오오우치 요시나가 할복


 코우지 3년(1557년) 나가토 쵸후쿠지(長福寺)에서 오오우치 요시나가(大内義長)가 할복해 명가 오오우치가가 멸망 했습니다. 


 성자 필쇠 제행 무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오오우치가의 멸망은 뭔가 느껴지는 것이 있습니다. 백제의 후손인 이들이 왠지모르게 가깝게 느껴지는 것도 있겠지요. 이 오오우치가의 마지막은 오오우치 요시나가, 자신의아마 그가 의지와는 관계없이 시대에 희생되고 천하를 노리는 어른들에게 상처입은 어린 희생양입니다. 오오우치가는 카마쿠라로부터 무로마치에 걸쳐 힘을 길러 그 오닌의 난 무렵에는 중앙에도 영향력을 가져 관령직에까지 오른 전국 다이묘입니다. 하지만 오오우치 요시나가는 오오토모 소린의 남동생입니다. 그런 그가, 한때 오오우치 요시타카의 양자가 되어 오오우치 요시나가(이름을 후에도 바꾸지만, 너무 많이 바꾸기 때문에 이 이름으로 통일하겠습니다.)가 됩니다. 원래 아들이 죽어서 양자로 들어가 별로 관심을 받지 못했지요.

오오우치 요시나가


 불과 2년후 의부 요시타카에 친자식이 탄생해 양자관계가 끝나 오오토모가에 되돌아가나, 이미 오오토모가에 그의 자리는 없었습니다.  오오우치가 요시타카가 가신들과 충돌을 반복하는 중, 스에 하루카타가 쿠데타를 일으켜 요시타카를 죽이고 새로운 당주로서 다시 요시나가를 부릅니다. 그는 단순한 꼭두각시 당주가 되었지요. 이 혼란을 절호의 틈탄 모리 모토나리는 이쓰쿠시마의 싸움에서 하루카타를 물리쳐 버리지요. 중심을 잃은 오오우치가를 요시타카는 통합하려 하나 원래 그를 장식으로서 밖에 보지 않은 오오우치의 가신들은 요시타카를 무시하고 가신끼리 싸우는 일이 됩니다. 결국 오오우치가는 모토나리와 온전히 싸울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각지에서 패전을 당하면서도 카츠야마성(勝山城)에서 버티고 있었지만, 그때 모토나리에게서 서신이 옵니다. '나이토 타카시세는 스에 하루카타와 짜고 반란을 일으킨 죄인이므로 죽어야 마땅하다. 요시타카는 오오토모가에서 온 꼭두각시이기 때문에, 타카시세가 할복하고 카츠야마성문을 열면 요시타카는 살려주겠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쵸후쿠지



 여러가지 의견이 소용돌이치던 중에 타카시세는 할복하고 성문을 열고 항복해 요시타카는 나가토의 쵸후쿠지로 옮겨집니다. 그러나, 다음날, 쵸후쿠지를 둘러싼 모리군은 요시타카의 할복을 요구합니다. 모토나리의 계략에 감쪽같이 넘어간 요시타카는 코우지 3년(1557년) 쵸후쿠지에서 할복하고 맙니다. 한때 츄고쿠 전역을 지배해 권세를 자랑한 오오우치가는 여기에서 멸망 합니다.


誘ふとて 何か恨みん 時きては 嵐のほかに 花もこそ散れ

속았지만 무엇을 원망하랴, 때가오면 폭풍우에 꽃도 지는것을


 죽음을 눈앞으로 한 요시타카, 20세에도 미치지 못한 소년의 체념이 이 사세구를 통해 가슴에 와 닿는 듯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