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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혼간지 렌노의 요시자키 퇴거

일본 전국시대;

혼간지 렌노의 요시자키 퇴거



 저번시간에 혼간지가 분메이 잇키(분메이 잇키 발발)에서 마사치카를 도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문명 7년(1475년) 렌노가 요시자키를 퇴거합니다.



히에이잔 렌라쿠지



 혼간지를 중흥시킨 선조라 구가해지는 렌노(蓮如)는  자필의 편지를 여러 편 써서 가르침을 알기 쉽게 전달했으며, 사회적 약자와 여성을 타깃으로 해 많은 신자를 모았습니다. 혼간지는 히에이잔 엔랴쿠지(比叡山延暦寺)에서 독립되 나갔기 때문에, 엔랴쿠지의 승려들은 이를 못마땅이 여겼습니다. 결국 엔랴쿠지의 승병 150명이 혼간지를 습격하게 됩니다. 이 사건으로 도망치전 렌노는 에츠젠의 요시자키에 자리잡은 것이지요. 저번에 말씀드렸듯이, 지역 무사들도 혼간지를 믿기 시작했기에 이제 이들을 건드리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오닌의 난으로 교토는 어지럽지, 에츠젠 주변에는 쟁쟁한 무사들이 있으니 더욱더 혼간지를 건드리는 것은 어려워 졌습니다. 이런 혼간지의 성장을 하쿠산신앙의 본거지 하쿠산궁(白山宮)은 미덥잖게 보았습니다. 게다가 종교의 위상이 지나치게 높아지자, 그들을 이용해 권세를 잡은 마사치카역시 공포를 느꼈습니다. 결국, 그는 동맹을 파기하고 혼간지를 탄압하기 시작합니다. 


 아무리 세가 성장했었도, 근본적으로 종교집단인 혼간지는 크게 상처를 입어 문도 대부분이 코시나카(越中), 이나미(井波), 즈이센사(瑞泉寺)등으로 도망칩니다.그리고 그들은 렌노에게 다시한번 혼간지 문도를 결합시켜 줄 것을 요구하나, 이에 나온 것은 시모쯔마 센소우(下間蓮崇)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렌노의 제자가 된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그 재능을 높게 산 렌노의 오른팔이 되어 활약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 '고승(렌노)님은 '싸워라'라고 하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렌노의 퇴거



 이 말을 들은 신도들은 다시 봉기하나, 또다시 진압되 버리고 맙니다. 이 이야기를 뒤늦게 알게된 렌노는 요시자키를 퇴거하기로 마음먹습니다. 렌노가 배를 타고 떠나려 할때 센소우가 인사를 하려하자, 대노하여 일갈하고 쫓아냈다고 합니다. 기나이(畿内)로 이동한 렌노는 셋츠(摂津) , 오사카(大坂)에 은거지를 마련했습니다. 후에 이곳은 이시야마 혼간지(石山本願寺)라고 불립니다. 센소우는 끊임없이 스승에게 용서해 달라하지만, 렌노는 죽기 전에서야 그를 용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3일 뒤, 센소우는 자살하고 맙니다. 

 끝까지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얻은 다음 목숨을 끊은 그의 모습은, 그가 결코 사리사욕을 위해서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요? 어찌되었든 이미 불붙은 혼간지 신도들은 차츰 그 세를 모아 다음 사건을 일으키게 되니, 그 이야기는 다음에 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