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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인물편/여성

일본 전국시대 여성인물편; 지나친 신분상승은 비극이다, 아사히히메

일본 전국시대 여성인물편;

지나친 신분상승은 비극이다, 아사히히메



 전국시대 사는 공주님들은 정략결혼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지금의 잣대로는 정략결혼 하면 부정적인 이미가 강해 마치 전국시대 공주들은 불행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녀들은 오히려 친가와 처가의 다리가 되는 역할을에 자긍심을 가지고, 그녀들 없이는 진행지 되지 않을 만큼의 큰 역할을 완수하는 경우도 있어 불행하지만은 않고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전국시대 여성들의 삶)


 전국시대 공주님에게 정략 결혼은 영주 지배하에 있는 백성과 다스리는 영토를 짊어진 '여자의 전투'입니다. 때로는 총칼로 전투하는 남자들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해,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하겠다는 것은 어린 아이의 어리광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현대 가치관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당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 할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되었으며, 또 연애 결혼의 기본인 여성인권이 어느정도 였는가는 잘 아실 겁니다. 그리고 보통 어린시절 부터 이런 교육을 시키기 때문에, 그녀들은 이러한 인생을 어느정도 받아들이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사히히메



 그러나 아사히히메는 다릅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아버지가 다른 여동생으로 농부와 결혼해 어른이 될 때까지, 농가의 신부로서 살아 온 사람입니다. 즉, 그녀는 이 시대의 공주님들의 독특한 가치관을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녀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지 않기 때문에 잘 알 수는 없습니다만. 그녀의 남편으로 꼽히는 것은 보통 두 명입니다.


 첫번째 남편은 사지휴우 가모카미(佐治日向守)입니다. 그는 오와리의 농부였지만, 아사히히메와 결혼 했기에, 히데요시가 출세하고 나서 그 부하가 되어 오와리의 유명한 가문 사지휴우가를 이었지만, 무사가 자신에게 맞지 않았는지 노이로제를 보이다 사고를 치고 할복했다고 합니다.


 두번째 그녀의 남편은 소에 단지베에 요시나리(副田甚兵衛吉成)입니다. 오다 노부나가의 부하에서 히데요시에게 가세해 당시 전 남편을 잃어 미망인이었던 아사히히메와 결혼했지만, 아사히히메를 이야에스와 정략결혼시키려는 히데요시의 의도로 인해 이혼했다고 합니다. 일설에는 이때 이혼당한 것이 위의 사지휴우 가모카미라는 설도 있기도 합니다. 이때 아사히히메의 나이는 무려 44세, 전국시대 여성으로서는 꽤 나이가 찬 상태에서의 만혼인 것입니다.


 덴쇼 10년(1582년) 6월 2일, 천하를 눈앞에 둔 오다 노부나가가 혼노지(혼노지의 변)에서 죽은 뒤에, 야마자키 전투(야마자키 전투)로 아케치 미쓰히데를 토벌해 주군이 원수를 갚은 하시바 히데요시는 그 뒤에 열린 오다의 계승자를 결정하는 키요스 회의(키요스 회의)를 유리하게 진행시켜 후계자를 본인이 추천하는 노부나가의 손자 산포시로 결정하고 후견인이 됩니다. 이에 노부오가 이야에스와 연합해 코마키 나가쿠데 전투가 일어납니다. 시종일관 우세했던 이야에스였지만 노부오가 돌연 히데요시와 강화를 맺어, 명분이 없는 이야에스역시 강화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세번째 혹은 두번째 남편 도쿠가와 이에야스



 덴쇼 12년(1584년) 12월에는 스스로의 차남을 인질로 보내(고마키나가쿠테 전투) 히데요시에 복종한듯 했지만, 그 다음 해에 히데요시가 다시 인질을 요구하자 거부해 버립니다. 그러자 히데요시와 이야에스의 사이로 긴장이 흐르게됩니다. 그런 긴장의 타개책으로서 덴쇼 14년(1586년) 아사히히메와 이에야스가 결혼하게 됩니다. 마지못해 이 결혼을 승낙한 이에야스는 그 교환 조건으로 부하의 유력 가신중에서 몇명 인질을 히데요시에 보낸다고 하는 요구를 들어주게 됩니다. 이로서 아사히히메와 이야에스는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략결혼인데다, 44세의 아내를 맞이하고 이야에스가 좋아할 리도 없어 이야에스의 충성을 확인하고 싶은 히데요시는 이 결혼의 5개월 뒤의 10월에 '아사히히메의 문병'이라 칭해 어머니 오오만도코로(大政所)를 이야에스에게 보냅니다. 사실 이것은 이야에스에게 인질을 보낸것이지요. 하지만 이야에스는 이를 의심해 아사히히메와 만나게 해서 두명이 눈물을 흘리며 얼싸안는 것을 보고 진짜라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그 후에야 이야에스는 상경해 히데요시와 만납니다. 대신, 자신에게 만일의 일이 있을 경우에 두 사람을 죽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결국 그 결혼 생활도 2년만 지속되었습니다. 덴쇼 16년(1588년)에, 아사히히메는 교토로 돌아오고 있던 어머니 오오만도코로의 문병을 이유로 상경해 그대로 교토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건설한 대 저택에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불과 2년 후 어머니보다 먼저, 48세라고 하는 연령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당대의 공주들의 마음가짐에 대해 무지했던 여인이, 아버지가 다른 오라버니의 성공으로 인해 남편을 잃고, 이리저리 헤매다 스트레스로 일찍 목숨을 잃은 것은 아닐까요. 그녀야 말로 전국시대의 혼란에 휩싸인 불쌍한 여인 같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