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고마키나가쿠테 전투(5)
모리 나가요시, 설욕에 실패하다 나가쿠데 전투
덴쇼 12년(1584년) 4월 9일 하시바 히데요시와 오다 노부오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싸운 '코마키 나가쿠데 전투' 중 나가쿠테의 전투가 발발 했습니다.
덴쇼 12년(1584년) 3월 13일, 히데요시 산하의 이케다 츠네오키(池田恒興)의 이누야마성 공략(이누야마성 공방전)으로 시작된 이 전투는 노부오와 연합한 도쿠가와와 기나이를 지배하는 히데요시의 전투는 이기는 쪽이 천하를 노리게 될 중요한 전투였습니다. 당시 무장들도 이 사실을 알기에 도쿠가와에 붙을 것인가 히데요시에 붙을 것인가에 대해 다양한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에야스는 차녀 도쿠히메(督姫)를 신부로 주어 동맹을 맺고 있던 관동의 호조 우지나오로(北条氏直)의 원군을 거절합니다. 하지만 기슈의 네고로중 이나 사이가중과는 동맹을 맺어, 기나이에서 게릴라전에 골치를 썩히던 히데요시는, 전투의 발발 후에도 오사카성에서 쉽사리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구로에서 패전(하구로 전투) 뒤에 히데요시 스스로 3만의 군세를 이끌고 진군합니다. 그리고 양군은 코마키에서 대치합니다.
나가쿠테 전투 그림
대치가 길어지자 모리 나가요시(森長可)는 하구로의 설욕을 하고 싶어 안달납니다. 결국 그는 '이에야스의 본거지인 미카와에 기습을 하고 싶다'라고 히데요시에 진언합니다. 처음은 그 작전에 반대했던 히데요시였지만, 친구인 이케다 츠네오키가 찬성해 조카 미요시 히데지(三好秀次)를 대장으로 해 그 작전의 실행을 결의합니다. 다만 히데지는 실전 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명목상으로 히데요시의 대리를 했을 뿐, 사실상은 이케다 츠네오키가 총지휘를 하고 있습니다. 4월 7일 이케다 츠네오키, 유케스게(之助) 부자를 군을 선두로 모리 나가요시, 세키 나리마사(関成政: 나가요시의 의형), 호리 히데마사(堀秀政)군이 뒤잇고, 최후미에 히데지군이라는 순서로 차례차례로 남동의 미카와를 목표로 해 출진합니다.
이들만 해도 총원 1만 6천이라고 하는 대군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은 이 시점에서 승패가 결정 났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었습니다. 이에야스가 코마키 나가쿠테에 집중하고 있는 동안에, 본거지의 미카와를 찌르는 기습을 하려 출격 한 그들이었지만, 이 일은 근처의 영주인 니와 우지츠구(丹羽氏次)에 의해, 도쿠가와 측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통지를 들은 이에야스, 노부오 연합군은 사실상의 대장인 이케다군을 피해 최후미의 미요시군을 목적으로 정합니다. 이렇게 해서 덴쇼 12년(1584년) 4월 9일의 오전 진군 하는 미요시군을 파악한 노부오, 이에야스 연합군은 단번에 급습합니다. 실전 경험이 없었던 히데지는 크게 당황해 승패가 결정되기 전에 그는 군을 버려 전선을 이탈해 버렸습니다. 대장을 잃은 군은 무너지는 것도 빠르지요. 히데요시의 군사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패주해 갑니다.
이 미요시군의 이변은 앞을 진군하던 히데마사에게 전해져, 도주하는 미요시군의 군사를 쫓아 연합군이 올 것이라 보고 진군을 멈추어 맞아 싸울 준비를 합니다. 적을 충분히 끌어 당겨, 단번에 총으로 공격을 해 버리지요. 이 작전은 훌륭히 성공해 이에야스, 노부오 연합군의 추격은 여기서 스톱 멈춥니다. 그러나 이 일은 선두를 가는 이케다군에 보고할 수 없었습니다. 정확히 이 때 이케다군이 오와리 이와사키성(岩崎城)의 근처를 진군 하고 있었을 때, 그 성에서 총이 발사했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미카와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별로 시간을 소비해서는 안되었지만 적이 근처에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한 그는 여기서 진군을 그만두고, 이케다 츠네오키는 전군을 이와사키성의 공격으로 투입해 버립니다.
포위당해 버리다!
이윽고, 머지 않아 이와사키성은 이케다군의 손에 떨어집니다만, 그동안 이케다군이 이에야스, 노부오 연합군에 포위되어 버립니다. 어쩔수 없이 전투에 돌입하였지만, 설욕을 위해 적을 마구 베던 모리 나가요시는 총격당해 쓰러지고, 총대장인 이케다 츠네오키역시 말을 타려다 적의 창에 찔려 목숨을 잃고 맙니다. 게다가 츠네오키의 아들 유키스게도 목숨을 잃고 나가요시의 의형 세키 나리마사도 목숨을 잃어 버렸습니다. 히데요시 본대야 멀쩡했지만 그는 많은 가신과 친우를 잃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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