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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고마키나가쿠테 전투(6) 최종전 개시, 카니에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

고마키나가쿠테 전투(6)

최종전 개시, 카니에성 공방전



 덴쇼 12년(1584년) 6월 15일, 카니에성(蟹江城)에 하시바 히데요시의 수군이 돌진해 코마키, 나가쿠테의 전투의 최종전이 개시되었습니다.


 덴쇼 12년(1584년) 3월 13일, 히데요시 산하의 이케다 츠네오키(池田恒興)의 이누야마성 공략(이누야마성 공방전)으로 시작된 이 전투는 노부오와 연합한 도쿠가와와 기나이를 지배하는 히데요시의 전투는 이기는 쪽이 천하를 노리게 될 중요한 전투였습니다. 당시 무장들도 이 사실을 알기에 도쿠가와에 붙을 것인가 히데요시에 붙을 것인가에 대해 다양한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에야스는 차녀 도쿠히메(督姫)를 신부로 주어 동맹을 맺고 있던 관동의 호조 우지나오로(北条氏直)의 원군을 거절합니다. 하지만 기슈의 네고로중 이나 사이가중과는 동맹을 맺어, 기나이에서 게릴라전에 골치를 썩히던 히데요시는, 전투의 발발 후에도 오사카성에서 쉽사리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구로에서 패전(하구로 전투) 뒤에 히데요시 스스로 3만의 군세를 이끌고 진군합니다. 그리고 양군은 코마키에서 대치합니다.



당시 상황 모식도



 나가쿠데의 뻐아픈 패배에 눈물을 훔친 히데요시는 노부오의 본거지인 오와리와 이세를 분단 하려고 생각합니다. 오와리와 이세의 국경에는 카니에성이 있었습니다. 히데요시는 이 성의 무장인 마에다 요쥬우로우(前田与十郎)를 설득해 배신시키는 일에 성공합니다. 성주 사쿠마 마사카츠(佐久間正勝)의 부재중에 사쿠마가를 추방한 요쥬우로우는 덴쇼12년(1584년) 6월 15일 카니에성 내에 히데요시 측의 다키가와 가즈마스등을 넣습니다. 카니에성이 히데요시의 손에 떨어진 일을 안 노부오와 이에야스는 즉시 카니에성의 주변의 성채로 이동해 성의 바로 서쪽에 있는 카니에가와에 군선을 내 공격을 시작합니다.


 한편, 수군끼리의 전투는 연안에서도 개시됩니다. 히데요시측의 수군을 지휘하는 것은 구키 요시타카(九鬼嘉隆), 그는 이에야스측의 제독 마미야 신고(間宮信高)를 죽이지만, 전황 자체는 고전을 강요당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바다에 진을 치고 있던 히데요시측의 군선은 카니에해에서 철퇴해 버립니다. 한편 이에야스의 별동대가 전개하고 있던 육상의 공격에 의해, 18일에는 히데요시측의 시모이치바성(下市場城)이 함락되어 버립니다. 이는 당연히 카니에성에서 분전 하는 병사에도 동요를 줍니다. 이를 놓치지 않고 연합군은 22일에 카니에성 총공격을 결행합니다. 눈 깜짝할 순간에 산노마루를 함락시켰으나 가즈마스등은 어떻게든 견뎌 이 때에는 성의 중심 건물과 성의 외곽은 지켰습니다. 그러나, 운 나쁘게 계절은 여름이여서 이윽고 성을 둘러싸는 수로가 완전하게 말라 버립니다. 



카니에성 터



 물을 구하는 곳과 물자를 보급하는 길을 잃어버린 가즈마스는 7월 3일에 카니에성을 개성 했습니다. 이 '카니에 전투'의 패전으로 가즈마스는 불가에 입문하고 노부오 이에야스 연합군은 카니에성을 폐성합니다. 한편 호쿠리쿠쪽에서도, 이 코마키 나가쿠테 전투로 인해 히데요시파의 마에다 토시이에와 이에야스파의 삿사 나리사마가 충돌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5개월 후의 11월이 되어 돌연 노부오가 단독으로 히데요시와의 강화를 성립시켜 버립니다.그러자 전투의 대의명분이 없어진 이야에스는 결국 전투를 중지하고 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