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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데요시 유언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병상의 히데요시, 유언을 남기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병상의 히데요시, 유언을 남기다 게이쵸 3년(1598년) 8월 9일, 병상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나 마에다 토시이에등을 불러, 히데요리의 장래와 조선에서의 철군을 맡겼습니다. 이 해의 5월 부터 컨디션이 무너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서서히 악화되는 병에, 자신의 임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꼈습니다. 그는 거성인 후시미성(伏見城)에 여러 다이묘를 소집해 나라의 장래나, 아들인 히데요리의 장래에 대해서 여러가지 유언인 듯한 부탁을 하고 있었습니다. 게이쵸 3년 8월 9일, 병상의 히데요시는 사방침(팔꿈치를 걸치는 배게)에 의지하면서 일어 납니다. 그 앞의 왼쪽으로는 도쿠가와 이야에스, 마에다 토시이에, 다테 마사무네, 우키타 히데이에가 앉아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모리 데..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히데요시가 영주들에게 충성의 서약을 요구하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히데요시가 영주들에게 충성의 서약을 요구하다 게이쵸 3년(1598년) 7월 15일, 와병 중이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재 영주에 대해 히데요리에게의 충절을 맹세하는 서약을 요구했습니다. 즉 히데요시는 자신의 사후, 신속하게 아들인 히데요리에게 바톤 터치 할 수 있게, 영주들에게 맹세하게 한 것입니다. 이 1개월 후, 히데요시는 저 세상으로 떠납니다. 그리고, 2년 후의 게이쵸 5년(1600년)에 세키가하라 전투가 있어, 또 15년 후의 게이쵸 20년(겐나 원년 1615년)에 일어난 '오사카 진'으로 도요토미가는 멸망하게 됩니다. 분카 9년(1812년)에 쓰여진 「폐절록(廃絶録)」과 메이지 24년(1891년) 쓰여진 「도쿠가와제봉록(徳川除封録)」이라고 하는, 도쿠가와시대에 개역 또는 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