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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랑크스

고대 그리스를 지배한 보병 호플리테스 고대 그리스를 지배한 보병 호플리테스 고대 그리스를 페르시아와 스파르타의 강성한 부대에서 구원해 준 것은 바로 이 그리스의 호플리테스 덕이었습니다. 그들이 착용하고 다녔던 커다랗고 둥근 방패인 호플른에서 유래한 명칭이지요. 재밌는 점은 호플른을 비롯해 갑옷, 투구 그리고 창이나 칼에 이르기 까지 본인이 직접 구매하여야 했기 때문에 중상류층 정도는 되야 호플리테스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모두 제 각각이었지요. 아테네를 비롯한 도시국가들은 의무 복무제였기 때문에 모든 시민은 군사훈련을 받았고, 전쟁이 일어날 경우 병사로서 군대에 참전하였지요. 따라서 가난한 농민들은 별로 좋지 않은 장비를 가지고 전쟁에 뛰어들게 되는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이들은 27kg정도 되는 흉갑과 투구, 정강이받이를 착용했으며 무기로.. 더보기
페르시아 왕조사; 마라톤의 기원, 마라톤 전투 페르시아 왕조사;마라톤의 기원,마라톤 전투 그로부터 2년 뒤 화를 삭히던 다리우스 1세는 다시 한번 그리스로 진군합니다. 아테네에서 폭정으로 쫒겨난 히파이스의 안내로 페르시아 군은 마라톤 평원까지 별 방해를 받지 않고 진군에 성공합니다. 아테네는 위협을 느끼고 군사강국 스파르타에 지원을 요청하지만, 스파르타는 아폴론 제사기간에 보름달 뜨기전의 전투를 터부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원을 보내지 못합니다. 아테네는 오직 8,000여명의 군사로 페르시아의 25,000여명의 군대와 맞딱드립니다.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아테네의 밀티아테스 장군은 공격태세를 취하기로 결정합니다. 당시의 군사배치는 보통 중앙에 주력부대를 배치하고, 날개에는 약한 부대를 배치한 뒤 돌파하는 형태였는데, 밀티아테스 장군은 반대로 날개에 주력..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