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킷카와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스에 하루카타와 모리 모토나리의 대결; 이쓰쿠시마 전투(3) 누구의 원군인가?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스에 하루카타와 모리 모토나리의 대결; 이쓰쿠시마 전투(3) 누구의 원군인가? 코우지 원년(1555년) 이쓰쿠시마의 싸움을 구원하려는 모리군과 무라카미의 수군 2백척이 아키 하츠카이치바다에 나타났습니다. 원군의 소식이 없는 것에 초조해진 모토나리는 삼남의 고바야카와 다카카게(小早川隆景)를 통해 마지막 원군 재촉을 하나, 다음날이 되어도 그들이 나타나는 기색은 없었습니다. 사실 그들이 하루카타에게 붙을 가능성마저 있었습니다. 이대로 미야오성이 점령당하면 꾀어낸 작전도 휴지쪼가리가 되고 단지 이쓰쿠시마가 제압되어 해안가의 성들이 모두 넘어가는 결과가 되어 버리는 것이지요. 게다가 육지에서는 군사에서 이길 수 있을 전망은 적기 때문에 모토나리는 답이 없는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결국 원군..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모리 모토나리의 도약, 킷카와, 코바카야 탈취 일본 전국시대;모리 모토나리의 도약, 킷카와, 코바카야 탈취 텐몬 19년(1550년) 모리 모토나리가 킷카와 부자를 살해했습니다. 관서의 대영웅 모리가도 모리 모토나리가 상속했을 무렵은 일개 고쿠진(반사 반농의 재야의 무사)에 지나지 않았던 것으로, 북쪽엔 아마고가, 서쪽엔 오오우치가, 남쪽에는 오오토모가의 사이에 낀 약소세력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리가가 엄청난 대국의 주인이 된 것은 전적으로 모토나리의 모략의 산물입니다. 모토나리는 뛰어난 장수라기 보다는 위대한 참모스타일 이었습니다. 치밀한 정보 활동에서 모략, 계략을 만들어 적에게 패배를 안겨주는 것이 그의 스타일이지요. 강대국에 둘러쌓인 약소국의 전략으로선 바람직한 것이었습니다. 모토나리가 크게 뿌리를 내리는 계기가 된 것은 차남 모토하루..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