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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토모

일본 전국시대 가문편; 카톨릭 왕국의 꿈, 오오토모 가문 일본 전국시대 가문편;카톨릭 왕국의 꿈, 오오토모 가문 일본 전국시대에 전파된 남만신교(기독교)는 상당히 큰 영향을 끼쳐, 기리시탄(크리스천) 다이묘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기리시탄 다이묘의 대표가 다름아닌 오오토모 소린입니다. '분고의 왕'이라 불렸던 소린의 오오토모 가문에 대해 포스팅 하려 합니다.오오토모 가문의 성립 원래 지금까지는 오오토모 가문의 선조는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頼朝)의 서자라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나카하라(中原)가문이 오오토모 가문의 선조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아무튼 '오오토모' 마을에 거점을 둔 이들은 자연스레 스스로를 '오오토모'라 자칭하게 되었습니다. 오오토모의 시조 요시나오(能直)는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에게서 분고국의 수호직을 제수받게 됩니다. 오..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나오시게, 5배의 오오토모를 유린하다 이마야마 전투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나오시게, 5배의 오오토모를 유린하다 이마야마 전투 겐키 원년(1570년) 오오토모 소린(大友宗麟)의 명령으로 류조지 다카노부(龍造寺隆信)의 사가성(佐嘉城)을 포위한 오오토모 치카사다(大友親貞)의 군에, 류조지의 부하 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直茂)가 기습해 오오토모군을 격파한 이마야마 전투(今山の戦い)가 있었습니다. 보통 전국시대하면 일본 혼슈의 이야기를 떠올리기 쉽지만, 시고쿠와 큐슈에서도 혼란은 번져있었습니다. 큐슈지방의 전국시대역사는 '큐슈 삼국지'라고도 합니다. 사츠마의 시마즈 요시히사(島津義久)와 분고의 오오토모 소린(大友宗麟) 그리고 히젠의 류조지 다카노부(龍造寺隆信)가 각각 한 축을 담당하며 큐슈의 세력균형을 아슬아슬하게 맞추고 있었습니다. 원래 큐슈 북부를 짊어지던 쇼..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모리 모토나리와 오오토모 소린의 대결, 모지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모리 모토나리와 오오토모 소린의 대결, 모지성 공방전 에이로쿠4년(1561년) 모리 모토나리가 오오토모 소린의 공격을 받고 있던 모지성을 구원하기 위해 아들 고바야카와 다카카게를 파견했습니다. 전국 3대 기습전의 하나라고 하는 이쓰쿠시마 전투로 스에 하루카타를 넘어뜨려 젊은 당주 오오우치 요시나가를 할복시키고, 츄고쿠 지방의 명문 오오우치씨를 멸망시킨 아키의 전국 다이묘 모리 모토나리는 이제 시선을 아키 밖으로 돌립니다. 오오우치가와 패권을 다투고 있던, 아마고가도 이때 약체화하기 시작합니다.(아마고의 몰락) 그런 가운데 큐슈의 입구 모지에 있는 모지성은 무로마치 시대부터 오오우치가가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오우치가가 멸망 해(오오우치 멸망), 오오토모 소린이 맡을 뻔한 이..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미미가와 전투(3) 시마즈의 츠리노부세 작전, 오오토모를 괴멸시키다 일본 전국시대;미미가와 전투(3)시마즈의 츠리노부세 작전, 오오토모를 괴멸시키다 덴쇼 6년(1578년), 타카기카와 전투로 시작된 오오토모 소린과 시마즈 요시히사세의 미미가와 전투가 본격적으로 겨격화 됩니다. 사츠마, 오스미를 지배하는 시마즈 요시히사에게, 후유가 남부를 빼앗긴 이토 요시스케(伊東義祐)가 분고의 오오토모 소린(大友宗麟)에게 구원을 청해 그것을 듣고 후유가 탈환을 목표로 하는 오오토모군과 이를 저지하기 위해 출진한 시마즈군이 싸운 미미가와 전투의 처음은 타카기카와의 기습전(타카기카와 전투)으로, 시마즈의 대승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미마가와 전투의 서막이 오르고 있었습니다. 대패의 반성과 전략 수립을 위해 열린 오오토모군의 군의는 좀처럼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다키타 시게카네(田北鎮周..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미미가와 전투(2) 미미가와 전투의 막이 오르다 타카기카와 전투 일본 전국시대;미미가와 전투(2)미미가와 전투의 막이 오르다타카기카와 전투 덴쇼 6년(1578년) 분고의 오오토모 소린과 사츠마의 시마즈 요시히사와의 미미가와 전투의 초전 타카기카와 전투가 있었습니다. 덴쇼 5년(1577년)의 기자키가하라 전투로 인해 사츠마의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에게 대패를 당해, 휴우가의 남쪽을 빼앗긴 이토 요시스케(伊東義祐)가 구원을 요청해, 시마즈와의 항전을 결의한 분고의 전국 다이묘 오오토모 소린은 휴우가의 땅 일부 양도를 약속받아, 크리스찬의 이상향 뮤지카를 지으려 했습니다. 이전의 부인과 이혼하고 크리스천인 새부인 쥴리아를 맞이해 본인도 돈 프란시스코로 개명해, 아들에게 다이묘 자리를 주고 출진합니다. 소린은 3만 5천의 군세를 해로로 이끌어 용이하게 후유가로 진출해 뮤..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오오토모 후계자 분쟁, 오오토모 2층의 참변 일본 전국시대;오오토모 후계자 분쟁, 오오토모 2층의 참변 텐몬19년(1550년) 분고(豊後)의 전국 다이묘 오오토모가의 20대 당주 오오토모 요시아키(大友義鑑)의 후계자를 둘러싼 분쟁이 발발했으니, 이것이 '오오토모 2층의 참변(大友二階崩れの変)'입니다. 분고의 전국 다이묘인 오오토모가의 제20대 당주 오오토모 요시아키에게는 정실이 낳은 요시시게(義鎮)라는 21세 장남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측실이 낳은 삼남 시오이치마루(塩市丸)을 후계자로 하고 싶어서 했습니다. 장남 요시시게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가신을 손으로 때리거나 검술의 연습인데도 상대를 무참히 치는등 천성이 난폭했다는 설, 요시시게가 병약했었기 때문에 당주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는 설, 요시시게의 어머니가 스오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