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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토 타츠오키

일본 전국시대 가문편; 배신의 아이콘 사이토 가문 일본 전국시대 가문편;배신의 아이콘 사이토 가문 일본 전국시대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바로 '하극상'입니다. 이 하극상의 대표격인 가문이 두 곳 있는데 한 군데는 호조 가문이고, 다른 한 군데가 바로 이 사이토 가문입니다.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탈취당한' 사이토 가문이지요. 사이토 가문의 성립 후지와라(藤原) 가문의 분가인 사이토 가문은 대대로 미노의 수호를 맡는 유서깊은 가문이었습니다. 오닌의 란(오닌의 난)에서는 사이토 시게요리(成頼)가 군세를 이끌고 서군에 서기도 하는 등 세력을 과시했었습니다. 하지만 서군에 참가해 교토에 가있는 동안 지방에서 정치를 하던 묘친(妙椿)의 세력이 성장해, 내란이 일어납니다. 시게요리에게는 다섯 아들이 있었는데, 그는 자신이 편애하는 넷째 아들에게 가독을 상속하려..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명참모 다케나카 한베에의 이나바야마성 점거 일본 전국시대;명참모 다케나카 한베에의 이나바야마성 점거 에이로쿠7년(1564년) 다케나카 한베에 시게하루 (竹中半兵衛重治)가 주군 사이토 타츠오키(斉藤龍興)의 이나바야마성을 빼앗았습니다. 다케나카 한베에는 토요토미 히데요시 밑에서 일한 천재 참모로 일본의 참모를 꼽자면 반드시 첫 번째나 두 번째에 그 이름을 올릴 정도의 인물입니다. 그런 그의 아버지 다케나카 시게모토(竹中重元)는 사이토 도산 때부터 사이토가를 섬기는 미노 이와테성(岩手城)의 성주였습니다. 다케나가 시게하루는 소년무렵 무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학구파로 점잖고 과묵했으며 조용한 성격이었습니다. 그는 하루종일 집안에서 책을 읽는 것에 전념해 상대가 무엇을 말해도 별로 반응도 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세세한 일에도 구애되지 않고 분노를 겉으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