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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우린니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츠루사키성 공방전(2) 묘우린니의 츠루사키성 탈환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츠루사키성 공방전(2)묘우린니의 츠루사키성 탈환 덴쇼 15 년(1587년) 3월 8일, 시마즈군의 공격으로 츠루사키성(鶴崎城)을 빼앗겼던 묘우린니(妙林尼)가, 다시 성을 탈환했습니다. 덴쇼 14년 묘우린니가 1/10정도 밖에 되지 않는 군세로 시마즈군의 맹공을 견뎌냈던 것 기억 나시나요?(츠루사키성 공방전) 하지만 결국 츠루사키성의 군량이 다해 묘우린니는 항복합니다. 성에서 나와 포로가 된 묘우린니는, 미마사카노카미에게 성 아래에 있는 저택을 받아, 그곳에서 살게 됩니다. 묘우린니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시마즈군을 초대해 연회를 베풀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여성이 부르는데 가지 않을리가 없겠지요. 아무튼 그녀는 원수인 시마즈군과 친하게 지내지만 뱃속에서는 칼을 품고 있었습니다. 묘우린..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구밀복검해 복수를 갚다, 묘우린니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구밀복검해 복수를 갚다, 묘우린니 묘우린니(妙林尼)는 요시오카 아키오키(吉岡鑑興)의 아내입니다. 사료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고, 「오오토모 흥망기(大友興廃記)」나 루이스 프로이스의 「일본사」에 기록되어 있는게 전부입니다. 하지만 그녀가 유명한 이유는 전국시대 아즈치 후기에 큐슈에서 가장 강성했던 시마즈의 대군을 몇 안되는 병사로 훌륭히 막아냈기 때문입니다. 그의 남편인 요시오카 아키오키(吉岡鑑興)는 '미미가와 전투'에서 패배하고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녀는 그 때 출가해 법명인 묘우린니를 얻게 됩니다. 남편이 죽은 미미가와 전투(미미가와 전투)이후 시마즈와 오오토모의 힘의 균형은 깨지게 되지요. 소린은 이에 히데요시에게 중재를 요청하나, 시마즈는 이를 무시하고 소린의 거성 우스키성..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츠루사키성 공방전 묘우린니의 대활약 일본 전국시대;츠루사키성 공방전여성 영주, 묘우린니의 대활약 덴쇼14년(1586년) 12월 12일, 시마즈의 대군의 공격을 받은 오오토모의 츠루사키성(鶴崎城)을 성주 대리였던 묘우린니(妙林尼)가 사수했습니다. 덴쇼 13년(1585년)의 3월~4월에는 기슈(기슈정벌)를, 6월~7월에는 시코쿠(쵸쇼카베 모토치카, 히데요시에 항복)를 평정 해, 순조롭게 천하 통일에의 길을 걷고 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였지만 아직 큐슈에는 세력을 뻗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전 해의 오키타와테 전투의 류조지를 물리친(다테나와테 전투) 사츠마의 시마즈가가 큐슈 전 국토를 손에 넣으려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오오토모 소린은 히데요시에게 구원요청을 하고, 히데요시는 이를 받아들여 덴쇼 13년(1585년)에 중재를 했었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