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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조지 다카노부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나오시게, 5배의 오오토모를 유린하다 이마야마 전투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나오시게, 5배의 오오토모를 유린하다 이마야마 전투 겐키 원년(1570년) 오오토모 소린(大友宗麟)의 명령으로 류조지 다카노부(龍造寺隆信)의 사가성(佐嘉城)을 포위한 오오토모 치카사다(大友親貞)의 군에, 류조지의 부하 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直茂)가 기습해 오오토모군을 격파한 이마야마 전투(今山の戦い)가 있었습니다. 보통 전국시대하면 일본 혼슈의 이야기를 떠올리기 쉽지만, 시고쿠와 큐슈에서도 혼란은 번져있었습니다. 큐슈지방의 전국시대역사는 '큐슈 삼국지'라고도 합니다. 사츠마의 시마즈 요시히사(島津義久)와 분고의 오오토모 소린(大友宗麟) 그리고 히젠의 류조지 다카노부(龍造寺隆信)가 각각 한 축을 담당하며 큐슈의 세력균형을 아슬아슬하게 맞추고 있었습니다. 원래 큐슈 북부를 짊어지던 쇼..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류조지가의 흥망을 함께한 케이린니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류조지가의 흥망을 함께한 케이린니 케이린니(慶誾尼)는 무로마치 중기부터 전국시대 아즈치 시대에 걸쳐 류조지가의 흥망을 지켜본 여인입니다. 류조지가의 당주 류조지 다네카츠(龍造寺胤和)의 딸로, 류조지 치카이에(龍造寺周家)에게 시집갑니다. 그리고 그와의 사이에서 히젠의 곰, 류조지의 중흥을 이끈 류조지 다카노부(龍造寺隆信)를 낳습니다. 텐몬 14년 쇼니가의 모략에 의해 류조지가는 박살이 나고 맙니다.(쇼니가와 류조지가) 이때 그녀의 남편도 죽고 말지요. 그리고 출가하지만 그녀는 상당한 여걸이여서 항상 단도를 들고다닐 정도라고 합니다. 고지(弘治) 2년(1556년)에 류조지가의 중신 나베시마 키요후사(鍋島清房)와 재혼해 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直茂)의 계모가 됩니다. 이 이야기가 좀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다테나와테 전투 히젠의 곰, 넘어지다 류조지 다카노부 전사 일본 전국시대;다테나와테 전투히젠의 곰, 넘어지다 류조지 다카노부 전사 덴쇼 12년(1584년) 3월 24일, 히젠 시마바라 반도(島原半島)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류조지와 시마즈가 싸운 오키타나와테 전투(沖田畷の戦い)로, 류조지 다카노부(龍造寺隆信)가 전사 했습니다. 주군에 해당하는 쇼니 스게모토(少弐資元)이 역도로 몰아 류조지의 대부분을 죽여버렸지만, 다카노부의 증조부는 살아 남았습니다.(쇼니가와 류조지가) 그는 류조지가를 부활시킬 것은 다카노부뿐이라며 그를 환속시켰습니다. 그는 그의 어머니 케이긴고(慶誾尼)의 도움을 받으면서 재기를 도모합니다. 이윽고 본가의 당주 류조지 타네미쯔(龍造寺胤栄)가 죽은 일로 그 부인과 결혼해 본가의 당주가 된 타카노부는 주군이었던 쇼니가를 멸망 시켜버려, 이마야마 전투로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오오토모 소린, 무지카 건설에 착수하다 일본 전국시대;오오토모 소린, 무지카 건설에 착수하다 덴쇼 6년(1578년) 오오토모 소린이 3만 5천의 대군을 인솔하고, 휴우가(日向) 나우시카(無鹿)에 진을쳤습니다. 휴우가 중앙에 일대 세력을 쌓아 올리고 있던 이토 요시스케(伊東義祐)가 시마즈의 공격을 당해 본거지인 사도하라성(佐土原城)에서 쫓겨나 분고의 오오토모 소린(大友宗麟)에게 도망친 것은 덴쇼 5년(1577년) 겨울의 일이었습니다. 둘은 결혼으로 인한 친척관계이기에 소린은 요시스케를 도우려 합니다. 하지만 가신들은 이에 반발했습니다. 순조롭게 영토를 넓혀 이미 큐슈에까지 세력을 펼치고 있는 츄고쿠의 패자 모리 모토나리, 히젠의 곰 류조지 다카노부등이 있었기에 소린이 남쪽을 향해 출진하면, 그들에게 배후를 위협해질 가능성도 없다고 할 수 없기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큐슈 북부의 패권을 두고 싸운 쇼니가와 류조지가 일본 전국시대;큐슈 북부의 패권을 두고 싸운 쇼니가와 류조지가 텐몬 14년(1545년) 주군인 쇼니 후유히사(少弐冬尚)가 류조지가를 의심해 결국 사가성(佐嘉城)을 공격하고, 류조지 이에카네(龍造寺家兼)가 도망쳤습니다. 히젠의 곰이라고 칭해진 류조지 다카노부(龍造寺隆信)의 조부인 이에카네, 아버지 류조지 이에스미(龍造寺家純), 숙부 류조지 요리즈미(龍造寺頼純) 등 류조지가를 이끌던 사람들이, 쇼니 후유히사의 중신 바바 요리치카(馬場頼周)에 의해 살해 당했습니다. 쇼니가는 원래 후지와라노 히데사토(藤原秀郷)의 후예로 '상황의 처소를 지키는(武者所) 후지와라가(藤原)'라고 하는 일로, 무토(武藤)씨와 자칭하고 있었습니다만,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頼朝)에 의해 겐페이 전투(源平の合戦)에 참전해 큰 무공을 거두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