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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토미

일본 전국시대 가문편; 최고의 출세, 도요토미 가문 일본 전국시대 가문편;최고의 출세, 도요토미 가문 보통 이 가문편에서 소개하는 가문들은 다 뿌리가 깊고 적어도 3대 이상은 간 가문들 입니다. 하지만 전혀 뿌리없이 등장해,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는 한 인물에만 포커스가 맞추어진 가문은 도요토미 가문 하나 뿐만이 아닐까합니다. 비천한 신분에서 천하인이 되기까지 토키치로의 아버지인 야에몬(弥右衛門)은 오다 가문의 아시가루 였지만, 화살을 맞아 농민으로 살아갔다고 합니다. 사실 키노시타(木下)라는 성도 야에몬의 대에서 부터 쓰이고 있었다고 하는 사료도 있어, 히데요시가 완전히 농민은 아니고, 반사반농의 토호가 아니었나 하는 설도 있습니다. 아무튼 그는 동생이며 평생의 동반자였던 히데나가(秀長)와 함께 오다 노부나가의 산하로 들어가게 됩니다. 노부나가의 신발을 맡..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병상의 히데요시, 유언을 남기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병상의 히데요시, 유언을 남기다 게이쵸 3년(1598년) 8월 9일, 병상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나 마에다 토시이에등을 불러, 히데요리의 장래와 조선에서의 철군을 맡겼습니다. 이 해의 5월 부터 컨디션이 무너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서서히 악화되는 병에, 자신의 임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꼈습니다. 그는 거성인 후시미성(伏見城)에 여러 다이묘를 소집해 나라의 장래나, 아들인 히데요리의 장래에 대해서 여러가지 유언인 듯한 부탁을 하고 있었습니다. 게이쵸 3년 8월 9일, 병상의 히데요시는 사방침(팔꿈치를 걸치는 배게)에 의지하면서 일어 납니다. 그 앞의 왼쪽으로는 도쿠가와 이야에스, 마에다 토시이에, 다테 마사무네, 우키타 히데이에가 앉아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모리 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