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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모 우지사토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다테 마사무네, 오슈 발발 잇키의 변명에 성공하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다테 마사무네, 오슈 발발 잇키의 변명에 성공하다 덴쇼 19년(1591년) 2월 4일, 앞의 카사이, 오사키 잇키의 주모자라고 의심된 다테 마사무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해서 변명하기 위해 상경했습니다. 외눈의 영웅 다테 마사무네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합니다. 덴쇼 18년(1590년) 7월에 오다와라성을 점령해, 관동에 군림한 호조를 멸망시켜(호조 멸망), 확실히 천하를 수중에 넣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 기세로, 오슈 정벌을 합니다. 그것은 전투라고 하는 것보다 오다와라성 공격때 참전하지 않았던 사람을 처분하고, 참전한 사람을 우대 한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하게도 영지가 몰수된 토호쿠의 무장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남북조대부터 오슈를 지배하는 명문..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다테 마사무네, 히데요시를 배반? 카사이, 오사키 잇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다테 마사무네, 히데요시를 배반? 카사이, 오사키 잇키 덴쇼 18년(1590년) 11월 24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오슈 정벌에 반발해 10월 무렵에 발발하고 있던 카사이(葛西), 오사키(大崎) 잇키로, 잇키 세력에 포위되어 고립상태로 농성하던 사누마성(佐沼城)의 키무라 요시키요(木村吉清), 키요히사(清久) 부자가 구출되었습니다. 덴쇼 18년(1590년)의 3월 말, 호조의 오다와라성 정벌에(오다와라 정벌 시작)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자신의 산하에 들어오지 않은 토호쿠의 여러 무장에게, 오다와라 공격에 참전하도록 명령하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3개월에 걸치는 싸움의 끝인 7월 5일에 오다와라성이 함락 된 후 호조 우지마사가 할복, 아들 우지나오가 코노야마에 들어가, 사실상 호조는 멸망..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