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인물 황제편;
네로는 정말로 폭군이었나?
불타오르는 제국의 심장 로마, 화마는 인간들이 쎃아온 모든 것들울 재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불타오르는 로마를 보며 어떤 사람은 울고, 어떤 서람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고, 또 어떤 사람은 한 줌의 물을 뿌리며 불꽃을 꺼투리려 했지요. 하지만 이 광경을 즐기는 이도 있었으니, 자신의 화려한 궁전에서 불타는 로마를 보며 리라로 호메로스의 한 구절, 파괴되는 트로이를 부르고 있는 로마의 황제 네로가 바로 그였습니다.
보통 잘 알려져 있는 네로의 모습
위의 이야기는 로마의 최고의 폭군 네로의 일화이지요.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네로는 로마의 대화재 때에 로마의 바깥에 있었지요. 그리고 화마는 네로의 궁전과 그 안에 있는 아름다운 그리스의 미술품도 재로 만들었습니다. 자신을 '최고의 예술가'라 자칭하던 네로의 행동과는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실 네로의 치세동안 로마는 발전했습니다. 후대에 로마를 망친 '막장' 황제들에 비하면 네로의 치세는 상당히 성공적이였지요, 딱히 이렇다 할 만한 실정도 없었으며, 많은 문화 공연과 이벤트로 오히려 시민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황제 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소위 '폭군'으로 알려진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복잡한 가족사
소 아그리파
네로의 어머니인 소아그리파나는 권력욕으로 가득찬 여인이였습니다. 그녀는 황제인 자신의 삼촌을 유혹해 결혼 한 뒤, 네로를 황태자로 만들었고 결국 그를 암살해 네로를 황제로 옹립했습니다. 그리고 네로 뒤에서 정국을 이끌려 했지요. 이에 네로는 불만을 가지고 그녀를 죽이려 합니다. 그러자 그녀는 모든 사람이 생각 할 수 없는 저지르지요, 아들인 네로를 유혹합니다.
당시 로마에서 근친상간은 터부시 되는 것이 아니었지만, 모자간의 근친상간은 바람직 한 것이 아니었지요. 또 공공장소에서의 성행위도 공공연히 행해졌기 때문에, 두 명의 관계는 곧 로마 전역에 퍼졌습니다. 하지만 소아그리파나가 계속 정국에 관심을 가지자, 결국 그녀를 가라앉을 배에 태워서 보내고, 그럼에도 수영을 해서 살아 나오자, 암살자를 파견해 그녀를 죽이지요. 그 뒤에 결혼한 옥타비아는 로마 시민들에게 큰 인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사이가 틀어지자 트집을 잡아서 그녀를 죽입니다. 이런 일 들로 네로의 인기는 크게 흔들렸습니다.
대화제와 그 처리
크리스트교가 오히려 성행하던 시절입니다
대화재와 그 처리 방식은 가족사로 흔들리던 네로의 인기에 결정타였습니다. 화재의 처리를 분주히 하던 네로는 자신의 궁전을 다시 지으려 했고, 이것이 시민들의 분노를 사자, 그 분노를 기독교인들에게 돌립니다.
당시의 기독교인들은 로마인들에게 불만을 사고 있었는데, 네로의 이 계략으로 인해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죽음을 맞이합니다. 일부는 양털을 뒤집어 쓰고 사자에게 잡아 먹히고, 화형해 쳐해지거나, 전차를 몰아 그들을 죽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기독교의 탄압자 로서 네로의 이미지는 후에 기독교를 믿던 유럽에서 폭군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사실 네로 시기에는 기독교 자체에 대한 박해가 강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네로 황제 때를 기점으로 기독교가 널리 퍼졌지요. 네로는 자신에의 비방의 화살을 돌렸을 뿐입니다.
네로의 몰락
"나 같은 예술가가 죽다니 정말 유감스런 일이군."
결국 신망을 잃어가던 네로는 정신줄을 놓고 자신의 신하들에게 밀고가 들어오면 모조리 죽여버리다 반란이 일어나자 도망가고, 그곳에서 시민들이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알자 자살하고 맙니다. 그는 자살할 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 같은 예술가가 죽다니 정말 유감스런 일이군."
네로가 죽고나서 오히려 그의 인기는 치솟았습니다. 아무리 이미지가 그래도 그는 역대 로마 황제 중에서는 제일 시민들에게 친숙한 황제 였기 때문이지요. 네로는 분명 폭군일지도 모르나, 다른 로마 황제들보다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예술가, 정치가로서의 그의 모습을 보여 주지 않기 때문에 엄청난 폭군으로 보이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