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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스에 하루카타와 모리 모토나리의 대결; 이쓰쿠시마 전투(4) 이쓰쿠시마 급습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스에 하루카타와 모리 모토나리의 대결; 

이쓰쿠시마 전투(4) 이쓰쿠시마 급습



 코우지 원년(1555년) 모리 모토나리가 스오우의 오오우치가의 실권을 잡고있던 스에 하루카타를 넘어뜨린 이쓰쿠시마 전투가 있었습니다. 


 모토나리가 탄 배와 그의 군세는 충분히 서로간의 거리를 벌린채, 운명의 항해를 개시합니다. 선두의 배가, 호우포에 도착할 무렵에는 조금 바람도 잠잠해져 무사히 상륙을 끝냈을 때, 모토나리는 코다마 나리카타에게 모든 배를 가지고 돌아가도록 명합니다. 배수의 진을 치겠다는 것이지요. 모토나리를 빼낼 배라도 남겨 놓자고 진언이 나왔지만, 모토나리의 결의는 단단했습니다. 한편 2 부대는 쿠마가이 노부나오(熊谷信直), 노미 무네카츠(乃美宗勝)를 선두로 세워, 예정 대로 크게 우회 해 이쓰쿠시마섬의 정면으로 다가갑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하루타다군의 배가 밀집해 정박하고 있어서 간단하게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원군이 가세했다하더라고 320척에 또 두 부대로 나뉜 모토나리 세력과 500척의 배를 가진 하루타다 세력의 차이는 큰 것이었지요. 



이쓰쿠시마 전투 개요도




 무네카츠는 한가지 계략을 생각해냅니다. '치쿠젠에서 가세하러 왔다' 라고 큰 소리로 외치면서 적선의 사이를 빠져나가 그대로 당당히 상륙하지요. 밤이었기 때문에 적병에게 아군이라고 믿게 하는 일에 성공한것 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주변 순찰을 하고 있던 무라카미 수군이, 정박하고 있는 하루타다군의 닻줄을 절단 해 하루타다군의 퇴로를 봉쇄합니다. 이것으로 전장인 이쓰쿠시마는 거대한 밀실이 되었습니다. 



이쓰쿠시마섬



 날이 밝는 무렵 섬 전체를 흔드는 함성소리와 함께 하루타다 진의 배후에 있는 언덕에 진을 친 모토나리본대는, 급한 비탈을 달려 내려  하루타다의 본진에 기습을 합니다. 이 날은 하루타다군도 미야오성에 마지막 총공격을 할 예정으로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급할 것이 없기에 당연히 완전하게 날이 새고 난 다음 군세를 정비하려 했지요. 아직 준비가 갖추어지기 전에 불의의 공격을 받은 하루타다군은, 금세 혼란에 빠져 완패를 겪게 됩니다. 이것을 안 하루타다군의 선봉 미우라 후사키요는 당황해도 분전하며 하루타다의 진에 당도해 오는 모리군의 맹공을 막지만, 좁은 지형에 대군이 발이 얽히는 상태가 되어 한층 더 혼란에 박차를 가합니다. 


 본진으로 도망치는 하루타다 군세를 애써 진정시키려고 지시를 내리는 하루타다였지만, 그 무렵에는 하루타다군을 속이고 정면에서 상륙한 코바야카와대도 공격을 개시해, 완전히 포위된 상태였습니다. 하루타다군은 그나마 움직일 수 있는 상태의 배를 확보해 도주를 시도하지만 해상에선 무라카미수군이 경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맹공을 빠져 나가 빠져 스오우에 귀환할 수 있던 사람은, 극히 일부였다고합니다. 이미 패전을 깨달은 하루타다는 할복을 하려하나 후사키요에 제지당하고 이쓰쿠시마를 탈출할 수 있도록 오모토포구로 향합니다. 주군을 피신시키려 후방을 맡은 후사키요는 이 도중에 장렬히 전사했습니다. 



이쓰쿠시마 전투 전황



 이렇게 해서 오모에도 포구로 향한 하루타다였지만 이미 움직일 수 있는 배는 없었기 때문에 말을 타고 겨우 다른 포구까지 이동합니다. 하지만 여기도 무사한 배는 1척도 없자 각오한 하루타다은 측근과 술을 한잔 마시고 스스로 할복하고 말았습니다. 35세의 젊은 나이로, 한때의 연인을 죽이고 권력자가 된 하루타다는 맥없이 좁은 섬에 쓰려졌습니다. 하지만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하루타다의 목을 효수해 전투를 끝내려는 모리군과, 이 작전을 최초부터 간파하고 있던 히로나카 타카카게라는 용장이 분전중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