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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전쟁편

일본 전국시대 전투편; 전국시대의 전투는 어땠을까? (11) 승패

일본 전국시대 전투편;

전국시대의 전투는 어땠을까?

(11) 승패




승리



승리!



 전쟁에 있어서 승리는 전투로 적군에게 다대한 손해를 주어 전투 의욕을 상실시켜, 항복에 몰아넣는 것입니다. 적이 항복하면 정치적 요구 예를 들어 영지의 할양등을 강요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전투에서 적의 영주를 토벌할 수 있으면 결정적인 승리가 됩니다. 전투로 적군에게 준 피해가 작으면, 적은 전투 의욕을 잃지 않습니다. 항복을 했다고 해도, 과도한 요구를 들이대면 다시 전쟁이 일어 납니다. 반대로 적군에게 준 피해가 크면, 상당한 요구가 가능하게 되지요. 적은 전력과 전의를 상실하고 있어, 요구를 거절할 수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잘린목을 확인하는 군감



 전투에 승리하면, 영주는 약탈의 허가를 냈습니다. 그리고 전투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축하연을 열었습니다. 술을 따르는 사람은 종이를 꼬아, 머리카락을 묶었다고 합니다. 대장은 술잔에, 가득착게 4번 따르게 해 합계 16번을 마셨습니다. 술안주는 전승기원의 의식(전승 기원의 의식) 때와 똑같이 말린전복, 황밤, 다시마를 먹었습니다. 다 마신 뒤에는 세번, 승리의 함성을 외쳤습니다. 이것은 부장의 역할이었습니다. 그 후, 군감이 적병의 목 앞에서 마지막 승리 선언을 했습니다. 새로운 영토를 얻은 영주는 마을에 금제를 발해 지배권을 확인했습니다. 이때는 통치를 하기 위해 약탈을 금지했습니다.


 마을사람이 마을을 떠나는 것은 농민이 영주의 탄압에 견디지 못한 것이지만, 영주에게의 반역이라고 생각되고 있었습니다. 영주는 마을사람의 도주에 대해 안전을 보증해, 죄를 묻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을사람은 마을로 돌아오지 못해 영주는 부역이나 세금을 얻을 수가 없게 됩니다. 적대하는 영주의 편이었더라도 용서하기도 했습니다.



패배



패배!



 항복을 나타내는 방법은 통일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성에서 삿갓(笠)을 올리거나 흔드는 것이, 항복의 의사 표시였던 것 같습니다. 이것이 쓰는 삿갓인지, 손으로 가리는 우산같은 것인지는 기록이 없기에 판별 할 수 없습니다. 항복의 뒤에 적장에 성을 명도해 퇴거하거나 적에게 포박 되었습니다. 농성전의 경우, 성주나 수장의 할복과 교환으로 성병의 목숨을 보장하기도 했습니다. 할복하지 않더라도, 삭발하는 등 항복을 의지를 나타냈습니다. 또, 복종의 의지를 나타내기 위해, 가보를 바치거나 자녀를 인질로 보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패배한 측의 장병의 말로는 비참했습니다. 패주 하는 도망치는 무사가 마을에 들어갔을 경우, 마을사람은 그를 죽여 공훈으로 삼았습니다. 이것에 의해서 승리한 영주에게 적의가 없는 일을 나타내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 도망치는 무사의 소지품은 강탈했지요. 패주 하는 아시가루는 몸을 가볍게 하려고 갑옷을 벗어 던졌기에, 추격을 받으면 대량의 사상자를 냈습니다. 강이 있으면 모두 배를 타려고 해, 그 중량으로 배가 가라앉는 일도 있었습니다. 여성이 있으면 신분의 귀천을 불문하고 강간되고 의복을 빼앗겨 벌거벗은 채로 방치되었습니다. 그대로 붙잡혀 하녀나 유녀로서 팔리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