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전투편;
전국시대의 전투는 어땠을까?
(12) 전후처리 '쿠비짓켄'
공양
전투의 승패는 운으로 정해집니다. 적을 토벌할 때도 있고 자신이 토벌해 질 때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무장은 적의 목에 예의를 다했습니다. 「고에쓰군기(甲越軍記)」에 의하면, 우에스기가에서는 대장이 적 대장의 목을 보는 것을 '목대면(首対面)'이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투구와 갑옷을 지닌 무사의 목이면 '쿠비짓켄(首実検)', 아시가루의 목이면 '미시리(見知り)'라고 불렀습니다. 「중원고충군진문서(中原高忠軍陣聞書)」는 적의 대장의 목을 취했을 경우, 대장은 말의 궤짝의 좌측에 목을 걸어서 옮겼다고 적고 있습니다. 목을 물로 씻어, 부패 방지를 위해 절단면에 소금을 바릅니다. 이것을 '소금절이기(塩漬け)'라고 말합니다. 목을 옮길 때, 술에 담그기도 했습니다.
쿠비짓켄(首実検)
전장에서 목을 대장에게 보일 때는, 목을 옷감으로 숨겨 활을 아래에 둡니다. 그 현을 대장에게 주고 목을 보입니다. 그 뒤에는 목을 숨기고, 활을 가져 나갑니다. 목은 신분이 낮은 것부터 씻어, 머리카락을 묶습니다. 신분의 높은 사람의 목은, 빗으로 빗고, 지노로 머리를 묶어 줍니다. 이름없는 목은, 새끼줄을 1척 4치로해, 머리카락을 묶습니다. 하지만 고리는 만들지 않습니다.
이름없는 목의 운반
목을 대장 아래까지 옮기는 사람은 잘린 목의 투구를 벗기고, 양측의 귀의 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들고, 목을 판 위에 둡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으면서 목의 오른쪽 옆 얼굴을 대장에게 보이게 합니다. 이 판은 폭, 높이 여덟치에 다리가 있는 상으로 모퉁이는 둥글게 가공되고 있었습니다. 재질은 전통적으로 멀구슬나무(栴檀)가 사용되었습니다. 목을 넣는 그릇에는 뚜껑이 있어, 거기에 이름, 관직등을 진서로 적었습니다.
신분이 있는 사람의 목은 통에 넣어 그 뚜껑에 이름을 기록하나, 목에는 종이를 붙이지 않습니다. 통의 주위에는 경, 염불등을 적습니다. 통의 높이는 1척 5치, 입구의 직경은 높이 8치의 상자입니다. 뚜껑 위에는 만(卍)자를 적습니다. 2매의 옷감을 봉합해 통 위를 묶습니다. 목봉(木棒)의 화살(봉의 형태로 앞을 평평하게 자릅니다)을 한 개, 그 위에 따로 둡니다. 목에 붙이는 종이는 길이 4치, 폭 7분 으로, 앞을 일본 장기말과 같이 날카롭게 하고 끈을 붙인 뒤, 왼쪽의 귀 부분에 묶습니다. 여기에 이름 등을 적습니다.
목대면에도 절차가 있었습니다
대장이 목대면을 할 때 몸에 지니는 것은 갑옷(외의 소도구), 부채(扇), 도, 칼입니다. 걸상(床机) 위에 곰이나 범의 가죽을 깔아, 거기에 앉습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검집을 잡고, 칼을 조금 뽑으면서, 왼쪽 눈으로 목을 봅니다. 이것을 곁눈질이라 하며, 적과 만나는 것 같이 합니다. 왼발을 오른쪽 다리로 발을 디디듯 합니다. 약식으로는 선 채로 비슷한 방법으로 행합니다. 목의 좌우에는, 사용했던 카부라(鏑)를 두개 찔러 넣습니다.
목에서 4척 정도 멀어진 곳에 현이 있는 활을 두어, 거기로부터 10척 멀어진 곳에 대장이 위치 합니다. 대장이 말띠 태생이 아닌 경우, 말띠인 사람이 대장과 목을 화해시키게 하기 위해 '무라시게도우의 활(むら重藤の弓)'을 가지게 합니다. 이 '시게도우의 활'은 대장이 가지는 활로, 활의 줌통 부분에 검은 옻칠을 하고, 그 위에 등(藤) 줄기로 촘촘히 감은 활입니다. 대장의 좌우에 서는 사람은, 창을 짓고 칼을 뽑아, 갑옷으로 몸을 감쌉니다. 또 그들은 다이와라와(大わらわ: 투구를 쓸 때의 모습으로, 머리카락을 풀어 단발 머리로 하는 것)이 되어, 대장과 같이 전투에 임하는 기분을 가집니다.
무장의 오른편에서는 주문을 읊었습니다
주문(注文: 목의 설명)을 읽는 사람은 집안에 한 명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그는 대장의 우측에서 주문을 읽어 갑니다. '쿠비짓켄'때, 다음의 주문을 주창합니다.
諸悪本末無明来実験直儀可処有南北
(しょあくほんまつむみょうらいじっけんちょくぎかしょゆうなんぼく)
의미는 불명확하지만, 이 주문에 의해 성불해 저주를 받는 것이 없어진다고 합니다. 약식이어도, 주문은 주창했습니다. 원한을 안은 목은 눈의 왼쪽 가까이에서 얼굴을 찌푸려, 이를 악물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목의 저주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목공양은 필수였습니다. 목은 자신의 성에 넣어서는 안 됩니다. 원령에의한 저주를 무서워했기 때문입니다. 목의 수가 많아도, 그 안에서 신분이 높은 목을 7, 8개만 보았습니다.
목에는 다섯 개의 종류가 있습니다. '우안(右眼), 좌안(左眼), 천안(天眼), 지안(地眼), 불안(仏眼)'입니다. 눈이 뒤에 붙는 것으로보아, 눈으로 분별했던 것 같네요. 이렇게 해서 확인이 끝나면, 옮겨 온 사람은 판에 목을 올리고, 왼쪽으로 돌아 퇴출했습니다. 그리고 대장은 부채를 두 번, 세 번 움직였습니다. 그 후, 대장은 술을 마시고, 확인을 한 사람을 에게 잔을 주었습니다. 그 때의 술안주는, 진영으로 돌아올(帰陣)때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목공양
적병은 원한을 안은 채로 죽어 있어 공양을 하지 않으면 원령이 되어 저주를 합니다. 그 때문에, 영주는 적병의 공양을 실시했습니다. 사실 시체를 그대로 두면 썩어가며 냄새가 나고, 역병이 퍼지기에 이를 본 전국시대 사람들은 '저주'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덴쇼 12년, 시마즈가는 미미가와 전투에서 오오토모군 전사자의 칠회기대시아귀공표(七回忌大施餓鬼供養: 죽은이에 대한 공양) 를 했습니다. 목 공양은 목 33개 마다 행해졌습니다. 목을 적측에 줄 때는, 스즈시(얇은 생사의 직물)를 2자, 2매로 꿰매고, 그 위에 목을 두고 네 귀퉁이를 묶어, 통에 넣었습니다.
남은 목은 산이나 강에 버려졌습니다. 목을 버릴 때는, 사환의 방위(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모릅니다)에 버렸다고 합니다. 방위는 날자에 따라서 다른데, 자마묘유(子馬卯酉)이면, 토끼(卯)의 방위에서 아홉 번째에 놓인 돼지(亥: 북서, 북북서의 사이). 축미진술(丑未辰戌)의 날은 용의 방위로부터 아홉 번째의 소(丑: 북동, 북북동의 사이). 인신사해(寅申巳亥)의 날은, 양의 방위로부터 아홉 번째의 호랑이(북동, 동북동의 사이)의 방위에 목을 옮겨, 효수했습니다.
이 의식을 실시하면 아군에게 적대하는 사람을 모두 불러모아 승천시킨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사환의 방위에 악인이 있었을 때에는, 그를 토벌해, 그 목을 묘, 진, 미의 방위로에서 아홉 번째의 곳에 버립니다. 이렇게 목이 생전에 죄가 있었으면, 그 대소를 감안해, 경우에 따라서는 끌고 다니기나 감옥 문 위에 두었습니다.
죄가 있는 목은 버려두기도 했습니다
쇼군, 문신의 목을 감옥 문에 올리는 경우, 판은 밤나무를 사용했습니다. 밤나무가 없으면, 배나무를 사용했습니다. 쇼군의 목은 호로(母衣:갑옷의 등에 붙여서 화살을 막거나 장식용으로 사용한 폭이 넓은 천)에 싸았는데, 이를 붓다카게(仏陀がけ)라고 합니다.
많은 목을 옥문에 올릴 때는 왼쪽으로 목을, 오른쪽으로 배나무를 세워 자귀나무(合歓)를 옆에 걸고 목을 올립니다. 줄은 에비라(箙:화살통)의 것을 이용합니다. 이것이 없을 때에는 하치마키(鉢巻: 머리띠), 갑옷의 띠를 썼습니다. 목을 싣는 받침대는, 신분의 높은 사람이라면 공경(公卿: 높은 다리가 붙은 삼보三宝 같은 것)에, 낮은 사람이라면 아시오리오시키(足打折敷: 낮은 다리가 있는 쟁반)에 올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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