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전투편;
전국시대의 전투는 어땠을까?
(9) 야습,방화와 추격, 구원
야습
야습은 적의 교란이 목적입니다. 따라서 참가하는 병사는 공명을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적의 목을 취하려 해서는 안 되고, 철퇴의 신호가 있으면 곧바로 퇴각해야 했지요. 또, 야습은 피아식별이 어렵기 때문에 같은편 사이 싸움을 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거기서 암호, 아이인이 중시되었습니다.(전국시대 암호)
또한 공성전 때, 아군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서 공성 측을 야습하기도 했습니다. 야간 성공격에서는 적 아군 모두 화롯불을 피워, 새벽녘까지 공방이 전개되기도 했습니다. 총성이나 말 전투(상대방에게 욕설을 퍼붇는 것)는 성방의 숙면을 방해해 사기를 저하시키기도 했습니다. 보통 적이 도착한 날의 밤, 전투를 끝내 피로한 날의 밤, 태풍이나 센 바람의 날의 밤, 운세로 적측에 길흉일 있다라는 결과가 나온 날에는 야습을 가하는 것이 좋습니다.
방화
삼국지의 적벽대전을 보면 화계의 무서움을 알 수 있습니다
방화는 적의 세력을 없애기 위해 넓게 사용된 전술입니다. 역사편에서도 자주 마을을 불태웠다고 썼었지요. 보통 바람이 강한 날을 선택해 결행되었습니다. 적의 성 뿐만이 아니라, 마을이나 전답도 방화의 대상이 되었지요. 「수시만실서유(守矢満実書留)」에는 분메이 12년 (1481년) 스와신사(諏訪神社) 상(上)사는 화재에 휩쓸렸습니다. 스와신사 하(下)사가 불을 질러, 그 혼란을 틈타고 약탈했던 것입니다. 같은해에 또 똑같은 방식으로 방화하고 약탈했다고 합니다. 이에 불에서 도망치려 압사하는 이도 수십이었다고 하니, 방화의 위력을 알 수 있습니다.
추격
전황이 불리하게 되었을 때, 군세는 전장으로부터 철퇴하려고 합니다. 이 때, 우세한 군세는 적군을 추격 해, 보다 많은 손해를 주려고 합니다. 철퇴하는 군세는 전군을 편성해, 추격 하는 군세를 금족 하려고 하지요. 추격도 지나치면 자군의 손해가 커집니다. 이것으로는 영지의 확보가 어려워지지요. 반대로 영지의 확보를 우선하면 추격이 소홀하게 되어, 적군에게 주는 손해가 적게 됩니다. 무엇이 옳은지는 영주의 판단에 달려 있었습니다.
구원
적의 영토에 인접하는 성은 공격을 받기 쉽습니다. 그 성을 지키는 성병은 늘 위험에 노출되어 있지만, 적에게 공격받아도 영주가 원군을 파견한다고 하는 신뢰를 안고 있었습니다. 만약, 영주가 원군을 파견하지 않으면 성병은 위기에 그대로 노출됩니다. 게다가 영주 자신의 신용도 실추해, 아군은 차례차례로 적에게 배신하지요. 그 때문에, 원군 파견은 영주에게 있어서 중요한 역할이었습니다. 공성전에서 피폐 한 공격측은 농성측의 구원에 달려 든 적군의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이 구원의 군세를 고즈메(後詰)라고 합니다. 공격측과 고즈메가 접촉하는 것으로, 대규모 전투가 발생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고즈메(後詰) 등장!!
다케다 신겐이 카이츠성을 축성 하자, 우에스기 겐신은 이것을 공락하려고 출진해 공격했습니다. 여기서 카이츠성구원에 다케다 신겐이 달려 들었기 때문에, 양군은 격돌했지요. 이렇게 해서 가와나카지마 전투가 일어났습니다. 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나가시노 성을 점령했을 때, 다케다 가쓰요리는 나가시노성 탈환을 위해 출진했고, 오다 노부나가는 동맹을 맺고 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돕기 위해 출진해 나가시노 전투가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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