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쵸쇼카베 모토치카 시고쿠를 통일하다
이요 평정
덴쇼 12년(1584년) 쵸쇼카 베모토치카의 부하 히사타케 치카나오(久武親直)가 사이온지 긴히로(西園寺公広)의 쿠로세성(黒瀬城)을 점령해 모토치카가 남 이요를 평정 했습니다.
피부가 희고 전투에도 잘 나오지 않아, 공주님이라고 까지 불렸던 쵸소카베 모토치카, 그는 에이로쿠 3년(1560년), 첫 출진을 장식한 나가하마효우 전투에서 단번에 '토사의 걸물'로 불립니다. 에이로쿠 11년(1568년)에 라이벌이었던 모토야마를 넘어 토사 중앙부를 평정, 토사 동부를 지배하는 아키 쿠니토라(安芸国虎)를 넘어뜨려 결국 시만토가와 전투에도 승리해 토사를 통일합니다. 그 뒤에도 모토치카는 아와를 평정해 냅니다.(쇼우즈이성 공방전)
시고쿠의 영웅, 쵸쇼카베 모토치카
이즈음 모토치카는 아와와 사누키의 국경에 있어 사누키 평야를 내려다 보는 운벤지산(雲辺寺山)에 있는 운벤지를 방문합니다. 그 절의 주지에 시코쿠 통일의 야망을 말하는 모토치카에게 주지스님은 '그건 무리겠지. 너는 토사를 덮는 뚜껑정도의 기량을 지녔을 뿐이라, 시고쿠 전체에 뚜껑을 덮는 것은 어려워. 다기의 뚜껑으로 물통을 덮으려는 것이지.'라고 했습니다. 이에 흥분한 모토치카가 '내가 가지고 있는 뚜껑은 명인이 만든 뚜껑입니다. 토사의 작은 영주에서 십여년 만에 토사전국에 뚜껑을 덮었습니다. 앞으로 이삼년 내에 시고쿠를 덮어 보이겠습니다.'라 합니다. 이 말대로 그는 사누키까지 평정해(사누키 평정) 시고쿠 통일을 눈앞에 둡니다.
시코쿠에서 남은 것은 이요뿐이었습니다. 당시의 이요는 북 이요의 코오노(河野)가, 중 이요의 우츠노미야(宇都宮)가, 남 이요의 사이온지(西園寺)가, 동 이요의 카네코(金子)가가 각각의 영지의 소호족을 통솔하는 형태로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모토치카는 아와나 사누키로의 진공과 병행해 이요에도 종종 군사를 진군시키고 있었지만, 코오노가 모리 모토나리를 의지하고 있어, 모리의 원군에 골치를 썩이고 있었지만, 이제 이요에 전력을 부어 넣을 수 있게 되어, 약간 유리한 전개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모토치카는 동 이요를 지배하는 카네코 모토이에(金子元宅)과 함께 코오노를 견제 하며, 히사타케 치카나오에게 군대를 주고 남 이요를 공격시켜, 사이온지 긴히로를 견제합니다.
이 사이온지 긴히로는 모토치카가 오다 노부나가와의 우호 관계를 가져 노부나가에게서 '시고쿠는 점령하는 대로 쵸쇼카베의 것'이라는 보증 문서를 받았을 때, '쵸쇼카베 모토치카는 반드시 배신할 것'이라 노부나가에게 말해 노부나가가 스스로 시고쿠를 지배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 인물이지요. 쵸쇼카베 모토치카가 그를 어떻게 생각했을 지는 안봐도 뻔합니다. 덴쇼 12년(1584년) 치카나오는 차례차례로 남 이요의 성을 점령해 긴히로의 거성 쿠로세성에 맹공격을 걸어 쿠로세성을 함락 시켰습니다.
한층 더 기세를 탄 모토치카는 약 1만 6,000의 군사를 인솔해 북쪽으로 진공해 코오노의 뜨거운 유즈키성(湯築城)으로 진군합니다. 이에 당황한 모리측은 원군을 보내려 하지만, 모토치카의 기세를 보고 겁을 먹어 항복해 버립니다. 이로 인해 나머지 이요의 영주들도 차례로 항복해, 결국 모토치카는 아버지의 유지를 이은 뒤 25년 만에 비원이였던 시고쿠 통일을 완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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