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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겐페이 쟁란/역사편

일본 헤이안시대 역사편; 미나모토노 다메토모 할복, 류구왕 전설

일본 헤이안시대 역사편;

미나모토노 다메토모 할복, 류구왕 전설



 닌안 2년(1170년) 3월 6일, 호겐의 난에 깨지고 이즈오오시마에 흘러가고 있던 미나모토노 타메토모가 할복 했습니다. 이것이, 일본에서 첫 할복 자살이라고 합니다.



미나모토노 타메토모 초상화



 덴노가문의 황위와 권력을 둘러싼 분쟁에 후지와라, 타이라, 미나모토 가문도 갈려서 싸우게 됩니다. 이 호겐의 난(호겐의 난)에서 야습을 결행한 타이라노 키요모리의 3,000이나 되는 군세에 대항하는 스토쿠 덴노 세력은 고작 200정도 였습니다. 하지만 이때 스토쿠덴노 측에서 분전한 맹장이 바로 미나모토노 타메토모입니다. 그는 젊은 시절, 아버지에게 의절되어 큐슈에 유배당했습니다. 그런데, 큐슈에서 자신의 땅을 지배하던 호족들을 토벌한 맹장입니다. 그의 힘을 무서워한 조정이 아버지에게 '타메토모 토벌령'을 낼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파면되자, 교토로 돌아와 조용히 있었다고 하는 인물입니다. 특히 그는 활의 명수였습니다.


 정확히 한 화살로 한 명의 머리를 궤뚫는 그와 그의 군세에 무서워한 키요모리 군은 일단 퇴각해, 대신 형 요시토모(義朝)가 인솔하는 군이 눈앞에 나타납니다. '덴노의 명령을 받고 있다. 게다가 형에게 활을 향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크게 소리치는 요시토모에게 타메토모는 대답합니다. '상황의 명령을 받고 있다. 게다가 부친에게 활을 향하다니! 그야말로 있을 수 없다!' 타메토모가 발한 화살은 요시토모의 투구를 스쳐, 아득히 뒤쪽의 절의 문이 꽂힙니다.  하지만 수의 차이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도 잡히게 됩니다만, 고시라카와덴노는 '이 정도의 무사를 그냥 참한다면 후세에 큰 비판을 받을 것이다.'라며 '이즈 오오시마(大島)'에 유배합니다. 물론, 그의 무위를 막기 위해 팔에 큰 상처를 내 버리지요.


 하지만 그는 오오시마에서도 무위를 발휘해 이즈의 섬들을 차례로 지배해 쿠니시(国司)를 위협합니다. 결국 조정은 그의 패도를 막기 위해 '타메토모 토벌군'을 냅니다. 결국 하치오야마(八丈小島)에 몰린 타메토모는 할복해 스스로의 목숨을 끊으니, 이것이 일본에 전래되는 첫 번째 무사의 할복입니다.



류구에 도착한 타메토모



 하지만 다른 설에는 그는 죽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즈에서 탈출한 타메토모는 섬들을 전전해 큐슈에 도착하고, 오키나와까지 흘러들어 갑니다. 그리고 그 토지를 재패해, 그곳에서 낳은 아늘이 류구 슌(舜) 왕조의 슌텐(舜天)이라고 합니다. 17세기, 류구왕국의 섭정이었던 하네지 쵸우슈(羽地朝秀)라는 명 재상이 「츄잔세이칸(中山世鑑 )」에 이 일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즈음 중국과 사츠마의 시마즈번 사이에서 골치를 썩이던 류구국은 시조를 타메토모로 함으로서 시마즈번의 압박을 견뎌내려는 명분을 만들어낸 것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