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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가문편

일본 전국시대 가문편; 카톨릭 왕국의 꿈, 오오토모 가문

일본 전국시대 가문편;

카톨릭 왕국의 꿈, 오오토모 가문



 일본 전국시대에 전파된 남만신교(기독교)는 상당히 큰 영향을 끼쳐, 기리시탄(크리스천) 다이묘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기리시탄 다이묘의 대표가 다름아닌 오오토모 소린입니다. '분고의 왕'이라 불렸던 소린의 오오토모 가문에 대해 포스팅 하려 합니다.

다키교요抱き杏葉

오오토모 가문의 성립


 원래 지금까지는 오오토모 가문의 선조는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頼朝)의 서자라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나카하라(中原)가문이 오오토모 가문의 선조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아무튼 '오오토모' 마을에 거점을 둔 이들은 자연스레 스스로를 '오오토모'라 자칭하게 되었습니다. 오오토모의 시조 요시나오(能直)는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에게서 분고국의 수호직을 제수받게 됩니다. 오오토모 가문은 분고로 이주한 뒤, 여러 가문으로 분가되었는데, 이 분가들이 후에 오오토모의 훌륭한 가신이 됩니다. 우지야스(氏泰)대에 아시카가 타카우지(足利尊氏)를 따라 부젠, 치쿠고의 수호직을 얻게 됩니다. 이로 인해 북 큐슈까지 아우르는 큰 다이묘로 성장하게 됩니다.


오토모 가문의 전성기



오오토모 소린



 전국시대에  요시나가(義長), 요시아키(義鑑), 요시시게(義鎮)의 삼대를 거치며 강성해진 오오토모 가문은 더욱 성장해 사츠마의 시마즈, 히젠의 류조지와 함께 큐슈 삼강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특히 요시시게 대에 분고, 부젠, 치쿠고, 치쿠젠, 히고, 히젠의 6개 국에다 이요, 휴우가 반국의 다이묘가 되어 그 위세가 드 높게 됩니다. 이 요시시게 바로 다름아닌 소린(宗麟)입니다. 


 오오토모 2층의 참변(오오토모 2층의 참변)에서 자신이 아닌 측실이 낳은 삼남 시오이치마루(塩市丸)을 후계자로 세우려는 아버지 요시아키를 제거한 요시시게는 영토를 확장하고 남만과 교역을 활성화하여 당시로는 상상도 하기 힘들었던 유럽산 대포를 지니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세력을 기른 오오토모 소린은 엉뚱한 생각을 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기독교의 신천지를 일본 열도에 건설하려는 것이었지요. 후유가국의 무지카에 기독교의 마을을 만드려 합니다.(무지카 건설 착수) 이를 위해 그는 시마즈 공격을 시작하니, 이것이 타카성 공방전입니다.(타카성 공방전) 그리고 이로 인해 발발한 미마가와 전투(미마가와 전투)에서 시마즈의 츠리노부세 작전에 보기 좋게 걸려들며 대군이 몰살당하고 맙니다.



오오토모의 몰락


 미마가와 전투에서 패배한 오오토모 가문은 보기좋게 몰락해 버립니다. 오오토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이 일어납니다. 오오토모 소린의 오른팔이었던 중신이 등을 돌립니다. 이에 수많은 가신들이 동요하지요. 그는 원래 타와라가의 영지를 돌려주지 않으면 적의 세력에 붙겠다고 합니다. 부득이, 소린은 치카히로의 요구를 들어 영토를 도와주지만 이것이 가신들의 동요를 한층 더 가속시킵니다. 다행히도 삼국지가 된 큐슈에서 류조지와 시마즈의 항전이 정점으로 달했던 덕분에 오오토모는 어떻게든 유지합니다.


 하지만 오키타나와데에서 시마즈가 류조지를 꺽고 큐슈의 패권을 잡자, 오오토모 가문은 위기에 봉착합니다. 결국 소린은 스스로 오사카성으로 향해 히데요시를 만나, 시마즈를 토벌해 달라 합니다. 이전에, 기슈 정벌을 끝내 시코쿠도 평정한 히데요시는 이 소린의 요청을 받아 큐슈 평정에 향합니다. 이 뒤로는 시마즈와 히데요시의 싸움이 되지요. 그리고 오오토모는 히데요시 산하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의 아들 요시무네는 후에 소린이 죽은 뒤에 영지가 몰수되어, 재기를 위해 여러 전투에 참여하게 됩니다. 하지만 임진왜란에서 큰 실태를 범해 그마나 남은 영지마저 빼앗기고, 도쿠가와 하타모토(徳川旗本)로 가문을 보전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