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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큐슈 북부의 패권을 두고 싸운 쇼니가와 류조지가

일본 전국시대;

큐슈 북부의 패권을 두고 싸운 

쇼니가와 류조지가



 텐몬 14년(1545년) 주군인 쇼니 후유히사(少弐冬尚)가 류조지가를 의심해 결국 사가성(佐嘉城)을 공격하고, 류조지 이에카네(龍造寺家兼)가 도망쳤습니다.


당시 큐슈 상황


 히젠의 곰이라고 칭해진 류조지 다카노부(龍造寺隆信)의 조부인 이에카네, 아버지 류조지 이에스미(龍造寺家純), 숙부 류조지 요리즈미(龍造寺頼純) 등 류조지가를 이끌던 사람들이, 쇼니 후유히사의 중신 바바 요리치카(馬場頼周)에 의해 살해 당했습니다. 


 쇼니가는 원래 후지와라노 히데사토(藤原秀郷)의 후예로 '상황의 처소를 지키는(者所) 후지와라가(原)'라고 하는 일로, 무토(武藤)씨와 자칭하고 있었습니다만,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頼朝)에 의해 겐페이 전투(源平の合戦)에 참전해 큰 무공을 거두어, 겐큐7년(1196년)에 다자이노쇼니(大宰少弐)에 임명받았습니다. 다자이쇼니는 중앙에서 파견되어 외교를 관장하는 관청을 맡는 직무입니다. 쇼니가는 대대로 이 직책을 맡아, 쇼니라는 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쇼니가는 점차 세력을 길러 치쿠젠, 히젠, 토요마에, 이키의 수호직도 겸하게 되어, 큐슈 북부에 일대 세력을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쇼니가 가몬


그러나, 무로마치도 중기의 무렵, 스오우의 오오우치가가 간몬 해협을 넘어 큐슈에도 진출하기 시작해 일진일퇴의 공방이 북큐슈에서 연일 전개되었습니다. 하지만 쇼니가는 갈수록 열세에 몰려 14대,15대 당주가 연달아 오오우치와의 싸움으로 목숨을 잃어 버렸습니다. 류조지는 그런 쇼니씨의 중신이었습니다. 제16대 당주 스게모토(資元)가 분고의 오오토모가의 지원을 받아 간신히 재흥을 도모하고 있던 향녹 3년(1530년), 오오우치가의 16대 당주 오오우치 요시타카(大内義隆)의 명령을 받은 치쿠젠 수호대 스기오키쯔라(杉興運)의 침공을 받았을 때, 타데나와데 전투(田手畷の戦い)가 일어나고, 쇼니가는 드디어 승리를 거머쥡니다. 이 때 류조지 이에카네와 후에 류조지의 가신이 디는 나베시마 키요히사(鍋島清久)등의 놀라운 활약에 의한 승리였지요. 그 때문에, 이 전투 뒤에 쇼니가 내에서 류조지가의 힘이 강해져 그 주종 관계가 미묘하게 됩니다. 


 스게모토는 처음에는 이에카네의 진언을 받아들여 요시타카와 화해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모략이어서 스게모토는 그 영지를 모두 빼앗긴 후 카지미네성(梶峰城)을 공격받아 텐몬4년(1536년)에 할복 해 쇼니가는 멸망 했습니다. 하지만 위기일발의 상황에서 까사스로 탈출한 것이 스게모토의 아들 쇼니 후유히사였습니다. 이에카네는 원 주군을 도와 쇼니가를 재건 하려 합니다. 하지만 물에 빠진 사람 구해 놓으니 보따리 내놓으라 한다고, 스게모토는 차츰 이에카네에게 의구심을 안습니다. 스게모토와 요시타카의 강화를 진언한 것도 이에카네고, 스게모토의 지원요청을 무시한 것도 이에카네 였습니다. 그의 가신인 바바 요리치카역시 동일한 의심을 지녀 두 사람은 류조지가를 적대시합니다.



 결국 텐몬 14년(1545년) 류조지의 거점 사가성을 공격해 류조지 일족을 살해합니다. 이에카네만은 어떻게든 탈출해 보복을 하려 하지만, 이미 90세 라는 나이가 발목을 잡아 다음해에 죽고 맙니다. 그는 이런 유언을 남깁니다.


츄난고(中納言)는 도량이나 야망이 매우 크다. 류조지가를 일으키는 것은 그 밖에 없다. 환속시켜 집을 잇게 하라. 


 이 츄난고가 바로 류조지 다카노부(龍造寺胤栄)입니다. 그가 자신들을 배신했던 원래 주군이었던 가문 쇼니가를 멸망시키기는 아직 많은 도정이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