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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다 노부나가의 오와리 통일; 우키노 전투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다 노부나가의 오와리 통일; 우키노 전투


 에이로쿠5년(1562년)  오다 노부나가가 오다 노부카타(織田信賢)를 공격한 우키노 전투로(浮野の戦い) 오와리 일국 통일을 완수했습니다.



오와리



동해도 제일궁 이마가와 요시모토를 넘어뜨린 일로 전국의 무대에 뛰어든 오다 노부나가이지만 실은 아직도 오와리조차 통일하지 못한 일개 장수였습니다. 아버지 노부히데를 이었을 때 고작 18세이던 노부나가를 둘러싸는 오와리의 정세는 매우 불안해 오다 일족중에서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알수 없는 혼란이 감싸고 있었습니다. 노부나가는  텐분 21년(1552년) 숙부 오다 노부미츠(織田信光)와 협력해 오와리 하사군의 수호대 오다 노부모토(織田信友)의 가신이었던 사카이 다이젠(坂井大膳)을 물리치고 3년 후 노부모토마저 살해해 키요스성(清州城)을 빼앗았습니다. 이름만 남은 수호 시바 요시카네(斯波義銀)도 추방한 노부나가는 항상 위험이었던 동생 노부유키마저 살해하며(노부유키 살해) 오와리에 영향력을 서서히 증대시키고 있었습니다.



동생 노부유키를 죽인 노부나가



 에이로쿠 원년 오와리 상사군의 수호대 오다 노부야스(織田信安)의 집안 내에 문제가 일어납니다. 그는 노부나가의 사촌형으로 어릴 적 두 사람의 사이는 좋았다고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 영지 문제로 갈등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노부나가에게 배신했다고 해 노부야스가 가신을 처단하거나 미노의 사이토 요시타쯔(斉藤義龍)와 손을 잡기도한데다 노부야스가 노부유키 측에 섰기에, 서로의 관계는 최악이었습니다.


 노부야스는 자신의 후계로 장남 노부가타(信賢)대신 차남 노부이에(信家)에게 뒤를 잇게 하려고 했습니다. 이에 반발한 노부카타는 아버지와 노부이에를 거점 이와쿠라성(岩倉城)에서 추방하고 실권을 잡아 버렸습니다. 이 내분을 호기라고 본 노부나가는 자신의 사촌형제이며 노부야스의 후견인이었던 이누야마성(犬山城 성주 오다 노부키요(織田信清)에여동생을 시집가게 했습니다.



우키노 전투(浮野の戦い) 사적지



 이 뒤 2,000의 군세를 인솔하는 노부나가와 약 3,000을 인솔하는 노부가타는 오와리 우키노에서 격돌했습니다. 처음은 수가 적어 약간 열세했던 노부나가군이었지만, 도중에 노부키요의 원군이 도착하여 형세는 단번에 역전이 됩니다. 괴멸 상태가 된 노부가타군은 전열도 정비하지 못하고 이와쿠라성으로 도망갔습니다.


 이 우키노 전투 이후 이와쿠라성에서 농성을 계속하고 있던 노부가타였지만 이윽고 노부나가에 항복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오와리 하사군의 수호를 추방하고 수호대를 살한 뒤에 상사군 수호대의 노부가타가 항복했으니, 이제서야 노부나가의 오와리 통일이 완성된 것입니다. 이 이후에 노부가나는 상경을 시도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