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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마사무네의 영토확장, 스리아게하라 전투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마사무네의 영토확장, 스리아게하라 전투



 덴쇼 17년(1589년) 6월 5일, 다테 마사무네가 무츠 아이즈의 아시나 모리시게(芦名盛重)를 물리친 스리아게하라 전투(摺上原の戦い)가 있었습니다.


 파죽지세로 무츠, 데와의 평정을 하던 젊은 외눈의 영웅 다테 마사무네(히토토리바시 전투)는 덴쇼17년의 초 봄에 모가미, 오사키 가문과 강화에 성공해, 4월에는 소우마 가문에 공격을 시작 합니다. 이 행동에 불안을 가지게 된 것이 무츠 아이즈의 아시나 모리시게(芦名盛重)입니다. 모리시게는 아버지 사타케 요시시게(佐竹義重) 결탁해 다테를 공격하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정보가 마사무네의 귀에 들어갑니다. 마사무네가 이미 아시나의 중신 이나와시로 모리쿠니(猪苗代盛国)와 내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6월 4 일경 배반을 표명한 모리쿠니의 초대로 마사무네는 이나와시로성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배반한 모리쿠니를 토벌 하기 위해, 분노한 모리시게가 1만 6천의 군사를 인솔하고 아이즈를 나옵니다. 우선은, 유다자와(湯達沢) 부근에서, 아시나 군의 선봉 토미타 타카자네(富田隆実)와 다테 군의 선봉인 모리쿠니가 부딪쳐, 전투의 포이 열립니다. 이 때의 다테군은 모리쿠니의 군과 합해 2만 3천이라고 하는 대군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테군은, 차례로 열세에 몰리며 반다이산(磐梯山)과 이나와시로 호수(猪苗代湖) 사이에 있는 스리아게하라로 이동합니다.



스리아게하라 전황도



 여기서도, 당분간 아시나군의 우세가 계속 되었습니다만, 이윽고 만반의 준비를 마친 마사무네의 본대가 등장하였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전황은 단번에 다테측에 우세하게 됩니다. 모리시게 스스로 선두에 서 분전 합니다만, 이 흐름을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철퇴를 하려고 하는 아시나군이었으 그 뒤에는 강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모리쿠니는 사전에 이 나쓰바시강에 있던 다리를 파괴해 적의 퇴로를 끊고 있었습니다. 도망갈 길이 없는 아시나의 군사들은 죽거나, 강에 뛰어들어 수많은 희생자가 나왔습니다.


스리아게하라의 마사무네


 이 전투의 승리에 의해서, 다테 마사무네는 무츠 남부를 세력권내에 넣어, 오슈의 약 반을 손에 넣게 됩니다. 불과 23세에, 오슈의 패왕이 된 마사무네였습니다. 당시 이시나 가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친분이 있었기에, 히데요시는 재삼에 걸쳐 마사무네에게 '왜 아시나 가문을 멸망시켰나?'며 묻지만, 마사무네는 그냥 무시했었습니다. 바로 오다와라정벌이 있기 전 까지는 말이죠. 그 다음 히데요시와 마사무네의 이야기는 다음 링크를 참조해 주세요.(마사무네, 히데요시 면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