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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삿사 나리마사의 할복과 검은 백합전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삿사 나리마사의 할복과 검은 백합전설



 덴쇼 16년(1588년) 5월 14일, 히고에서 일어난 잇키의 책임이 추궁 당해 삿사 나리마사가 할복 자살했습니다.



삿사 나리마사



 원래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시바타 가쓰이에나 마에다 토시이에와 함께, 노부나가의 천하 통일의 호쿠리쿠 평정 담당이었던 삿사 나리사마, 그는 노부나가의 사후 하시바 히데요시와 가쓰이에가 대립했을 때에는, 도야마성에서 가쓰이에 측에 서서 싸웠습니다. 또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대립했을 때에는 이에야스측에 서 스에모리성을 공격했지요.(스에모리성 공방전), 게다가 극비로 이에야스를 만나기 위해, 경장비로 험준한 타치산을 넘었습니다.(결사의 타치산 넘기) 이렇게 죄다 히데요시에 반발하고 있었던 그는 목숨을 잃지 않고 무사히 히데요시의 산하에 들어가, 큰폭으로 영지는 빼았기지만, 도야마의 신카와가 안도되어 그곳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큐슈정벌의 공일 인정받아 히고의 50만석을 다스리는 영주가 됩니다.


 아무리 공이 있다고 해도 제1의 불순분자에게 영주를 시킨 것은 히데요시와 그의 부인 기타노만도코로(北政所)의 방식이었습니다. 적을 몰아부치면 언제 독안에 든 쥐가 되어 나를 물려고 할지 모르지요. 이렇게 숨통을 터줘 천하를 잡으려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와 히데요시 사이에는 아이가 생기지 않았지요. 게다가 히데요시는 여자를 좋아했기에 여러 측실을 들이기도 했습니다. 



검은 백합을 받은 기타노만도코로



 아무튼 삿사 나리마사도 자신이 영주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이 기타노만도코로의 도움덕이라 생각하고 그녀에게 예를 바치러 갑니다.  그는 타치산에 자생하는 검은 백합을 한송이 가지고 가서 바쳤습니다.


"부인, 이 꽃을 받아 주십시오. 타치산의 깊숙한 곳에서만 피는 꽃입니다."

"어머! 정말 신기하군요. 이 꽃을 보면서 다과회를 열어야 겠네요."


 사실 그녀는 측실인 오이치노가타의 딸인 차차(요도도노)와 라이벌 관계였습니다. 좋은혈통에다가, 오이치노가타를 사모했던 히데요시가 제일 오이치와 비슷한 딸인 그녀를 총애했기에 질투심이 있었지요. 그리고 다과회가 열립니다.



검은백합



"차차님은 검은 백합을 보신적이 있습니까?"

"아니오. 들어본적 없습니다."

"희귀한 꽃이라고 하네요. 이번에 저도 진상받아 처음 보았습니다."

"그러면 눈에 잘 새겨 두어야 겠네요."


 이렇게 다과회에서 기타만도코로는 성공적으로 자신의 꽃을 자랑해 측실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삽니다. 그런데 얼마 뒤, 챠챠가 '꽃 공양'에 기타노만도코로를 초대합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잡초와 함께 검은 백합이 널려 있었습니다. 사실 다과회에서 검은백합을 보고 질투한 챠챠가 다른 루트로 입수한 것이지만, 기타노만도코로가 이를 알리도 없고, 그녀는 삿사 나리마사가 자신에게 치욕을 입힌 것으로 생각합니다.



요도도노와 기타노만도코로는 라이벌 이었습니다



 도야마에 전해지는 '검은 백합전설'이 있습니다. 삿사 나리마사가 예의 타치산을 넘어 이에야스를 만나러 갈 때, 도야마성을 부재중으로 하고 있었지요. 당시, 나리마사가 제일 마음에 든 사유리(早百合)라고 하는 여성이, 가신의 한 명과 바람이 났다는 소문이 성내를 휩쓸었습니다. 물론, 성으로 돌아와 이 이야기를 들은 나리마사는 분노 폭발했습니다. 당연히, 사유리도 상대 남성도 '그런 일은 없습니다.' 라고 부정합니다만, 이미, 성내의 소문이 되어 버린 이상 실제로 관계가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나리마사는 둘을 처벌합니다.


 죽기 전 마지막에 사유리는 '당신을 원망하며 말씀 드립니다. 이 3년의 후, 타치산에 검은 백합이 피었을 때, 삿사가는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라고 원망하며 죽었다고합니다. 이 전설이 맞던, 이 위의 이야기가 맞던지 삿사 나리마사는 여성의 원망에 의해 목숨을 잃은 일이 되는 군요. 아무리 맹장이라도, 여성의 원한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