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삿사 나리마사의 실책, 히고 잇키 발발하다
덴쇼 15 년(1587년) 7월 10일 히고 와이후성(隈府城)의 구마베 지카나가(隈部親永)가 영주인 삿사 나리사마(佐々成政)에게 반발해 군사를 일으킨 히고 잇키가 발발했습니다.
삿사 나리사마(佐々成政)
원래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시바타 가쓰이에나 마에다 토시이에와 함께, 노부나가의 천하 통일의 호쿠리쿠 평정 담당이었던 삿사 나리사마, 그는 노부나가의 사후 하시바 히데요시와 가쓰이에가 대립했을 때에는, 도야마성에서 가쓰이에 측에 서서 싸웠습니다. 또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대립했을 때에는 이에야스측에 서 스에모리성을 공격했지요.(스에모리성 공방전), 게다가 극비로 이에야스를 만나기 위해, 경장비로 험준한 타치산을 넘었습니다.(결사의 타치산 넘기) 이렇게 죄다 히데요시에 반발하고 있었던 그는 목숨을 잃지 않고 무사히 히데요시의 산하에 들어가, 큰폭으로 영지는 빼았기지만, 도야마의 신카와가 안도되어 그곳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쿠마토성, 후의 쿠마모토성
그 후, 히데요시의 큐슈 정벌에 참가해 히고 50만석이 주어져 훌륭히, 쿠마토성(隈本城)의 성주가 되어 영주로 복귀합니다. 그러나 이 히고 영주가 된 것이 히데요시의 책략에 의한 것은 아닌가라는 말이 나올 만큼 미묘합니다. 나리마사는 히데요시의 정실 네네와의 '검은 백합사건(黒百合事件)'이나, 도야마에 전해지는 '검은 백합전설(黒百合伝説)'등이 있지만(삿사 나리마사와 검은백합), 그것은 어디까지나 복선이고, 전설이며, 창작일 가능성도 큽니다. 사실 그가 할복 자살을 명령받는 직접적인 원인은, 이 히고의 잇키의 발발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잇키의 발발은, 사실 히데요시에 있어서 상정할 수 있는 범위입니다.
쿠니진은 현지에 뿌리 내린 영주 아래에 있는 시골 무사입니다. 하지만 영주가 중앙에서 임명되어 갑자기 그 땅에 오면, 토착세력인 그들과 갈등이 빈번했습니다. 나리마사의 영지가 된 히고는 특히나 더 이 지역색이 강한 곳이었습니다. 게다가 나리마사는 노부나가의 부하중 뛰어난 무사 20명을 뽑은 '호로슈(母衣衆)'에 뽑힐 정도로 오기를 가지고 무리한 일도 해내는 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성격을 히데요시는 역시 잘 알고 있었기에, 그는 이 사태를 만들려고 나리마사에게 히고를 준 것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혹은 히데요시가 나리마사를 키울려고 한 것일 수도 있지요. 그는 영지를 주며 나리마사에게 '통치가 어려운 곳이니 차분히 시간을 들이게, 3년간은 쿠니진의 영지를 내버려 두고 측량도 하지 말게.'라고 했다고 합니다.
쿠마모토의 히고 잇키 재현 축제
하지만 나리마사는 그 성격 대로 억지로 신속하게 쿠니진들을 지배하려고, 히데요시의 조언을 무시하고, 곧 바로 국민들의 영지의 일부를 삭감하고, 측량을 개시해 버립니다. 이렇게 해서, 덴쇼15 년(1587년) 7월 10일, 쿠니진인 와이후성의 구마베 지카나가(隈部親永)가 나리마사에 반발해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그것을 안 다른 쿠니진들도 차례차례로 군사를 일으켜, 잇키로 발전한 그 병력은 총원 3만이 되어, 나리마사의 거성 쿠마토성을 둘러쌉니다. 9월이 되자, 쿠마토성을 구원하려 치쿠고의 야나가와성(柳河城) 성주 다치바나 무네시게(立花宗茂)가 원군을 파견합니다만, 나리마사군과 무네시게군 모두를 합쳐도 1만도 채 안 되는 상태로, 잇키군을 격퇴하기는 커녕 쿠마토성이 한층 더 고립합니다.
결국, 히데요시는 시코쿠나 큐슈의 영주를 총동원해 편제 한 잇키 진압군을 출진시킵니다. 10월 하순에는 이 진압군에 모리 데루모토가 더해져, 잇키의 거점인 타나카성을 포위하는 것과 동시에, 쿠니진들에게 항복하면 살려주겠다며 배신을 종용합니다. 이윽고, 12월 2일, 최초의 반역자이며, 잇키의 중심 인물인 지카나가가 항복해, 사실상 잇키는 종결했습니다. 결국 나리마사는 이 책임을 져 할복하고, 히고는 고니시 유키나가가 남부, 가토 기요마사가 북부의 영주가 됩니다. 그 때, 기요마사가 들어간 쿠마토성은 후에 구마모토성(熊本城)으로 이름을 바꾸어 일본의 유명한 성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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