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본 유신시대/역사편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조슈 동란(1) 이노우에 분타 습격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조슈 동란(1) 이노우에 분타 습격



 겐지 원년(1864년) 9월 25일, 조슈번에서 어전회의를 끝낸 이노우에 분타(御前会議)가 반대파에 습격되어 중상을 입었습니다. 



이노우에 분타



 이노우에 분타는 후의 이노우에 카오루(井上馨)입니다. 에토 신페이(江藤新平)와 얽힌 오쇼쿠 사건(汚職事件), 로쿠메이관(鹿鳴館)의 호화 삼매경이라고 해, 어딘지 모르게 좋은 인상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토 히로부미와함께 조슈번의 일익을 담당해, 에도막부 말기의 동란을 넘어 유신에 공헌한 사람입니다. 후에 오쇼쿠 사건으로 실각해도, 다시 정부에 귀환한 대단한 사람입니다. 뇌물과 이권으로 사욕을 채웠다고 합니다만, 한편으로는 정이 많았다는 설도 있습니다.


 젊은 무렵에는 타카스기 신사쿠들과 함께, 영국 공사관에 불을 지를 정도의 양이파였습니다. 그러나, 그 사건의 다음 해인 분큐 3년년(1863년)에, 이토 히로부미, 내각의 아버지 야마오 오우조우(山尾庸三), 철도의 아버지 이노우에 마사루(井上勝),조폐의 아버지 엔도우 킨스케(遠藤謹助) 등, 조슈 5걸(長州五傑)로 불리는 이들과 함께 영국에 밀항합니다. 이노우에 자신은 외교의 아버지라 불립니다만, 눈앞으로 본 외국의 현상에 경악하여 양이가 말도 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게 됩니다. 비슷한 생각을한 이토 히루부미와 귀국해 시모노세키 포격 사건의 평화교섭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다음 해 정국이 크게 움직입니다. 분큐 3년 연(1863년) 8월 18일 존왕양이파의 중심이었던 조슈번이 공무합체파에 의해 조정에서 제외돼 버립니다(8월 18일의 변) 이로서 조슈번은 역적이 되어 버립니다. 이 조정과 막부의 처사해 조슈번이 저항한 것이 긴몬의 변입니다.(긴몬의 변) 이후, 덴노는 공식적으로 조슈를 역적으로 선언합니다. 그렇기에, 이제 조슈 정벌에 참여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에 따라 어느 편에 설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이로 인해 조슈번도 둘로 나뉘어지게 되었습니다. 겐지 원년(1864년) 9월 25일 행해진 어전회의에서 분타는 상대 의견을 설파해 '막부에 항전'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그날 밤 귀가 도중이던 분타는 3명의 자객에게 습격당합니다. 이 자객을 보낸 것은 무쿠나시 도우타(椋梨藤太)라고 합니다. 깊은 상처를 입어, 대량의 출혈을 하게 됩니다. 의식이 사라지던 와중에, 근처의 농부에 의해 발견되어 자택에 옮겨졌습니다. 그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형에게 차라리 자신의 목을 베어달라고 합니다. 칼을 쳐 들어 베려고 하는 순간에, 그의 어머니가 '벤다면 이 어머니부터 베우 주십시오.'라며 피투성이인 아들의 몸을 껴안았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기적을 불렀는지 친구인 한의사 도코로 이쿠타로(所郁太郎)가 수술해 목숨을 살려 냈습니다. 


 그 후의 번내는 분타의 세력이 차지하게 되어, 후쿠하라 에치고(福原越後)를 시작으로 하는 3 가로의 목을 내밀어, 조슈 정벌을 회피하려 합니다. 이 날로부터 불과 3개월 후의 12월 16일 타카스기가 고잔지(功山寺)에서 군사를 일으켜, 조슈번은 존왕의 선두에 서게 됩니다. 이날, 습격당한 뒤 살아남은 분타와는 다르게, 스후 마사노스케(周布政之助)는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분타의 이야기는 어머니의 사랑을 보여주는 이야기로 일본 교과서에도 실려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