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시모노세키 전쟁(3) 시모노세키의 전후 처리
겐지 원년(1864년) 8월 8일 시코쿠 연합 함대의 공격에 의해, 시모노세키에 있던 조슈번의 포대가 괴멸 되어, 시모노세키 전쟁이 종료했습니다.
카에이 6년(1853년)의 페리의 내항으로, 미일 화친 조약을 체결시킨 막부와 그런 막부에 불만을 가지는 양이파는 당대의 코우메이덴노와 결합해 '존왕양이파'가 됩니다. 그 존왕양이파의 대표격이 바로 조슈번이었습니다. 그런 조슈번이 분큐 3년년(1863년)의 5월에, 간몬 해협에 정박 중이던 미국 상선에 포격한 것을 시작으로(시모노세키 전쟁 발발), 해협을 지나는 외국선에 차례차례로 발포하고, 그에 대한 보복으로 미국, 영국, 프랑스, 네델란드의 4개국의 연합 함대가 시모노세키를 습격합니다. 이를 '시모노세키 전쟁'이라고 부릅니다.
겐지 원년(1864년) 8월 8일의 이 날, 시코쿠 연합 함대에 완전히 패배한 조슈번은 포대가 괴멸되어 시모노세키 전쟁은 끝나게 됩니다. 하지만 전쟁은 끝났어도 그 전후처리가 남아있었습니다. 상대는 외국입니다. 아무리 용감한 자라 해도 외국인들과 교섭을 하고 싶어하진 않았습니다. 결국 당시 감옥에 갇혀있던 타카스키 신사쿠(高杉晋作)입니다. 영국측의 통역인 아네스트 사토에 의하면 '그는 큰 무늬가 그려진 의복에, 검은 에보시(烏帽子) 1을 써 당당히 영국 군함에 탑승해 가로의 아들 시시도 쿄우마(宍戸刑馬)라 자칭했다. 그 모습은 마왕과 같이 오연(傲然)해 어느쪽이 승자인지 모를 정도였다.'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건 그냥 립서비스인지 아니면 허세였는지, 조건은 굉장히 조슈번에 불리하게 교섭이 되었습니다.
타카스키 신사쿠
1, 간몬 해협의 외국선의 통행의 자유
2, 석탄, 음식, 물등의 항해 필수품의 매각
3, 악천후시의 선원의 상륙 허가
4, 포대의 철거
5, 배상금 300만 달러의 지불
하지만 잘한 점도 몇 개 있었습니다.'막부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므로, 배상금은 조슈번이 아닌 막부에 받으라 했습니다. 또한, 시모노세키 바다에 있는 히코도(彦島)를 조차하고 싶다'라고 하는 요구에 관해서는 일본의 신화 시대부터의 일본의 역사에 대해 말하기 시작해 끝없이 이야기해 상대가 아연하고 있는 동안에 애매하게 끝나버리고 있었습니다.배상금을 막부에 받으라고는 했습니다만, 실제로는 지불능력이 없었다는 것이 맞는 듯 합니다. 사실 300만 달러라는 거액은 막부도 지불할 수 없었습니다. 영국 공사 올 콕이 일부러 지불 능력이 없을 정도의 고액을 요구해, 개항을 시키려 한 것입니다.
이 요구대로 개항하려면 효고나 시모노세키를 개항시켜야 합니다만, 효고는 덴노가 있는 교토에 가깝기 때문에 안 되고, 외국과 전쟁한 직후로, 게다가 불과 1개월전에 하마구리고몬의 변(긴몬의 변)으로 막부와 갈등관계에 있는 조슈번 내의 시모노세키도 적합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이 배상금 문제가 막부를 무너트리는 원인 중 하나가 됩니다. 그렇기에 배상금은 메이지 신정부가 계승하게 됩니다만, 그런 메이지 정부도 그 지불에 고생합니다. 시모노세키와 동시기에 일어났던 사츠에이센쇼 전쟁의 배상금도 사츠마번이 막부에 요구했었기에, 이것 역시 막부를 무너뜨리는 경제적 부담이 되었었지요.
- 무사가 머리에 쓰던 건(巾)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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