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존왕양이파 일소되다, 8월 18일의 정변
분큐 3년 연(1863년) 8월 18일, 사츠마, 아이즈의 양번이, 존왕양이파의 문신을 교토로부터 추방한 8월 18일의 정변이 발발했습니다.
그 페리 내항 이래 막부의 소극적인 외교로인해, 양이파는 덴노에 기대를 가져, 존왕양이파라고 하는 파벌이 됩니다. 한편, 사바쿠파(佐幕派)의 대표격인 다이로우인 이이 나오스케는 그런 존왕양이파를 어렵게 탄압하는 안세이의 대 옥사(안세이의 대 옥사)를 결행합니다. 하지만 그 이이 나오스케가 사쿠라다몬 밖의 변(사쿠라다몬의 변)에 의해서 암살되어 막부의 권위는 쇠퇴해 버렸습니다. 거기서 막부는 조정과 합해 관계를 수복하는 것과 동시에 존왕양이파를 억압해 국내를 하나로 정리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공무합체'입니다. 그 상징으로 행해진 것이 제14 대장군 도쿠가와 이에모치와 코우메이덴노의 여동생 가즈노미야의 결혼이었습니다. 이이 나오스케의 뒤를 이어 그 결혼을 성공시킨 안도 노부마사는 사카시타몬 외의 변으로 실각해 버립니다.(사카시타몬의 변)
교토를 떠나는 존왕양이파의 사람들
그 후, 공무합체의 정책을 계승한 사츠마 번주의 아버지 시마즈 히사미츠가 존왕양이파를 일소 하려고 움직이기 시작해 에도에서 막부 개혁을 요구합니다. 정사총재(政事総裁)인 마츠다이라 요시나가(松平慶永)가, 장군 후견직에 도쿠가와 요시노부(徳川慶喜)가 교토 수호직에 아이즈번의 마츠다이라 가타모리(松平容保)가 임명됩니다. 당시에는 조정 내에서도, 존왕양이파와 공무합체파로 나누어져 있어, 그 존왕양이파의 산조 사네토미(三条実美)등이 조슈번과 접촉해, 분큐 3년(1863년) 5월 10일에, 양이를 실행하도록 주장해, 각 번에 명령을 내렸습니다. 당연히 그들은 교토 근처에 잠복해 재기를 꾀합니다. 이 존왕양이파의 탐색을 하던 것이, 교토 수호직 마츠당라 가타모리의 부하가 된, 신선조였습니다. 이때부터 신선조는 전성기를 맞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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