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제1차 가와나카지마 전투 후세 전투
텐몬 22년(1553년) 사이강을 건너 후세(布施)에 포진 하고 있던 우에스기 겐신의 군이, 다케다 신겐군의 선봉군을 격퇴했으니, 이것이 바로 제1차 가와나카지마 전투의 후세 전투 입니다.
겐신과 신겐은 최고의 라이벌 답게 치열한 가와나카지마 전투를 벌였는데, 이 가와나카지마는 총 5회에 걸쳐 벌어지지만, 제일 치열하고 1:1 대결마저 있는 제 4차 전투를 일반적으로 가와나카지마전투로 간주합니다. 아무튼 제1차와 제2차의 전투 사이에 이번에 다룰 후세 전투가 일어났습니다. 에치고의 우에스기 겐신(당시는 나가오 가게토라)을 의지한 요시키요는 카츠라오성을 탈환합니다. 이것이 제1차 가와나카지마의 전투의 서막, 사라시나 야와타 전투입니다. 겐신의 개입을 안 신겐은 일단 군사를 물리고 휴양을 취해 태세를 정돈하고, 3개월 후 가이를 다시 출진합니다. 약 1만의 대군인 타케다군은 요시키요의 성을 차례차례 점령하며 8월에 가와나카지마에 진격합니다.
한편 겐신역시 약 8,000의 군사를 인솔해 카스가야마성을 출진하고 후세일대에 진을 칩니다. 이렇게 해서 텐몬 22년(1553년) 우에스기세가 타케다군의 선봉을 패퇴시키는 것으로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선봉군을 무찌른 기세로 야와타까지 진출한 우에스기군은 아라토성을 점령하고 당시 신겐이 본진을 두고 있던 시오타성으로 진격합니다. 그러나 당하고만 있을 신겐이 아니지요. 다케다군은 야음을 틈타 기습 작전을 결행 아라토성에 방화하는 것으로 반격 합니다. 사실 확실한 사료가 없어, 소규모 전투의 연속과 같은 싸움이었던 것으로 봅니다. 그래도 대개 우에스기 겐신의 우세라고 하는 것이 정설입니다.
결국, 본진의 시오타성을 공략하지 못한채로 겐신은 진을 철수해 카스가야마성에의 귀로에 오릅니다. 예상 이상으로 원정이 길어진 일로 자금이 바닥났고 곧 겨울이 되어 에치고의 월동준비를 해야했기도 했지만, 원래 주시하던 강적과 갑자기의 대결전을 할 생각보다는 적에 대한 분석을 위한 출진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겐신의 철퇴를 본 신겐도 시오타성을 뒤로 해 가이로 돌아갔습니다. 전국시대 굴지의 라이벌의 첫 전투는 이렇게 다소 싱겁게 끝을 맺었습니다. 카스가야마로 돌아온 겐신을 맞이한 것은 덴노의 사자였습니다.
겐신은 곧바로 상경해, 제105대 고나라덴노(後奈良天皇)에게 배알하여'사적 전란 평정의 윤지(私的戦乱平定の綸旨)'를 받습니다. 이것으로 겐신이 관군이 되고 그 겐신에 적대해 전란을 야기하는 신겐은 역적이 되어, 명분을 중요시 하는 겐신은 신겐과 싸우는 대의명분을 얻었습니다. 이 다음에 겐신과 신겐이 만나는 것은, 2년 후의 코우지 원년(1555년) 제2차 가와나카지마 전투인 사이카와 전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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