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승리일까 패배일까? 신겐과 우에타바루 전투
텐몬 17년(1548년) 가이의 다케다 신겐과 시나노의 무라카미 요시키요(村上義清)의 '우에타바루 전투'가 있었습니다.
시나노의 동부에 세력을 넓히는 다케다가, 그 세력은 카츠라오성(葛尾城)의 성주 무라카미 요시키요의 영지의 근처까지 다가갔습니다. 무라카미 요시키요는 당시 시나노 일대에서 가장 큰 세력을 가지고 있던 무장입니다. 소규모 전투를 계속하면서, 간신히 텐몬 16년(1547년)에 사쿠군의 시가 성주 카사하라 키요시게를 격파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신겐은 드디어 오가타로 진공합니다. 드디어, 요시키요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신겐이 치는 곳이 요시키요의 동맹국들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 신겐의 기세가 커지면 그들 중에는 다케다로 등을 돌리는 세력도 나올지도 모르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입니다.
우에스기 겐신과 다케다 신겐
요시키요가 움직였다고 안 신겐은 텐몬 17년(1548년) 극한의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가이에서 출진합니다. 요시키요의 본거지 카츠라오성 근처까지 쳐들어간 신겐은 치쿠마강(千曲川)의 남쪽 우에타언덕(上田原)에 진을 칩니다. 한편의 요시키요는 강을 사이에 두어 북측의 이와하나(岩鼻)에 진을 칩니다. 다케다군은 7천, 무라카미군은 5천 정도의 군세였지요. 이렇게 해서 양자는 우에타바루에서 격돌하게 됩니다. 다케다군의 선봉을 맡은 것은 노부토라 시대부터의 중신 이타가기 노부가타(板垣信方). 전황은, 다케다가에 유리하게 흘러 이 선봉군만으로, 150 이상의 수급을 취해 진중은 승리에 취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노부가타는 엄청난 실수를 범해 버립니다.
초전의 승리에 취했는지 아직 전투가 계속중인 것에도 불구하고 수급의 확인을 시작해 버립니다. 거기에 조용히 다가온 무라카미군이 단번에 돌입해 공격을 개시해 노부가타는 반격을 위해 말을 타나 전사하고 선봉대는 괴멸 상태가 되어 버립니다. 이것에 사기가 오른 무라카미군은 역습을 해 여기저기에서 타케다군을 압도합니다. 그러나 다케다 신겐이 직접이르는 다케다군 게다가 사에몬 노스케(栗原左衛門佐), 오부 토라마사(飯富虎昌), 오야마다 마사토키(小山田昌辰)라고 하는 역전의 무장들이 적군을 무참이 베고, 모로즈미 토라사다(諸角虎定), 사나다 유키타카(真田幸隆)등이 그 무너뜨린 적을 추격 한다고 하는 형태로 서서히 전황을 만회하기 시작합니다.
우에타바루 전투 기념비
기록되고 있는 사망자의 수를 보면, 타케다측 700명 무라카미측 2,900명으로 다케다의 승리였습니다. 우에타바루에 서 승리한 것은 신겐입니다만, 다케다측은 이 전투에서 노부가타같은 아버지의 대로부터의 중신중의 중신 아마리 토라야스를 잃고, 신겐 자신도 칼을 맞아 부상당했습니다. 개가할 때에도 부축을 받아 겨우 움직였다고 합니다. 신겐 본인은 이 전투에서 승리했다고 생각한 것 같지 않습니다. 종전 후도 전혀 가이로 돌아오려고 하지 않고, 우에타바루에 계속 머물어 걱정한 어머니 오오이 부인의 설득에 의해서, 겨우 진을 거두고 돌아왔습니다. 여기서 일단, 시나노 동부에의 진공을 백지로 돌리는 신겐이었지만 그 2년 후의 텐몬 19년(1550년) 다케다, 무라카미의 양군은 다시 토이시성(戸石城)에서 격돌하게 됩니다.
'일본 전국시대 > 역사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본 전국시대; 안쇼우성 전투 (0) | 2012.12.19 |
---|---|
일본 전국시대; 남만신교의 전파 (0) | 2012.12.19 |
일본 전국시대; 신겐의 시가성 공략 (0) | 2012.12.19 |
일본 전국시대 쿠보 괴멸하다 카와코에 야전 (0) | 2012.12.19 |
일본 전국시대; 큐슈 북부의 패권을 두고 싸운 쇼니가와 류조지가 (0) | 2012.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