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다케다 신겐의 시나노 공략의 제일보 스와 전투
텐몬 11년(1542년) 6월 24일, 다케다 신겐이 가이 쿄라이시(教来石)에서 군을 정비해 시나노에 침입을 개시했습니다.
아버지 노부토라를 쫓아 버린 뒤(노부토라를 추방) 가이국의 당주가 된 신겐은 그 일년 후의 텐몬 11년(1542년)에 드디어 영지 확대에 나섭니다. 아버지 노부토라가 국력을 쏟아부으면서도 달성할 수가 할 수 없었던 시나노를 목표로 정하지요. 게다가 신겐은 아버지가 동맹을 맺고 있던 스와(諏訪)를 제일의 타겟으로 선택합니다. 노부토라가 종종 침공하고 있던 곳은 시나노 사쿠군이나 치이사가군, 그러나 이 곳들은 산에 둘러싸여 공격이 어려운데다가, 가이로 통하는 길도 좁고, 야츠카타케를 우회 해 공략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습니다. 게다가 별로 풍족하지 않은 이 지역을 장악 했다고 해도 별로 메리트도 없었지요. 신겐에 있어서는, 광활한 분지와 스와호가 있는 스와의 땅은 몹시 매력적이고 또한 공격하기 쉬웠지요. 단지, 여기 스와를 수습하고 있는 스와 요리시게(諏訪頼重)에는 신겐의 여동생이 시집가고 있습니다.
원래 가이과 스와는 옛부터 큰길로 연결되어 사람의 왕래도 왕성했기 때문에 신겐의 아버지 노부토라는 여기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딸을 시집가게 해 동맹을 맺는 형태를 취하고 있었지만, 신겐은 반대로 스와를 점령하고, 효율적으로 손에 넣는 작전을 취햇습니다. 우선은, 스와 일족의 타카토요 요리쯔구(高遠頼継)를 포섭하고 그것을 발판으로 스와가의 본거지 우에하라성(上原城)을 공격합니다. 이를 막을 수 없었던 요리시게는, 쿠와바라성(桑原城)으로 도주해 농성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미 이 시점에서 벌써 많은 병사가 도망치거나 죽어서 다케다세를 맞아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다음해 요리시케는 항복했습니다.
신겐은 일단 강화라고 하는 형태를 취해, 요리시게와 그 동생 요리타케(頼高)를 고후로 연행해, 토우코우지(東光寺)에 유폐 합니다만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명은 할복해 스와가는 멸망합니다. 이 때, 미인으로 유명했던 요리시게의 딸에게 한 눈에 반한 신겐은, '적의 자식을 측실로 하면 무엇이 일어날지 모릅니다!'라고 반대하는 가신들을 뿌리쳐 그녀를 얻어 후에, 카츠요리(勝頼)를 얻게 됩니다. 후에 그녀는 스와부인(諏訪御寮人)으로 불리게 됩니다. 그런 그녀의 덕일까요 신겐은 이 스와의 지배에 대해 부하의 사람이 스와 가명을 잇게하는 유연한 방책을 취하려고 합니다만, 그것도 잠시 스와의 지배를 노리는 타카토요 요리쯔구가 배신해 이나군의 후지사와 요리치카(藤沢頼親)과 결탁하고, 신겐에 반기를 듭니다.
스와고료닌을 만난 신겐
신겐은 그의 친족인 토라오우(寅王)를 전면에 두고 출진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스와의 분가 출신이었던 요리쯔구는 한 때의 주군 요리시게의 아들에게 활을 당기지 못하고, 어이 없게 도주했습니다. 그 아버지는 배신했는데, 아들에게는 활을 당기지 못하는 것이 재밌네요. 그러나 시나노 수호 오가사와라 나가토키(小笠原長時)가, 의리남동생이었기 때문에 구원을 위해 출진했습니다. 그러나 역시나 신겐, 당황하지 않고 재빠르게 스루가의 이마가와 요시모토와 사가미의 호조 우지야스에게 원군을 요청합니다. 공통의 적인 관동 관령 우에스기 노리마사의 존재를 들어, 적의 적은 아군이라며 협력을 요청했습니다. 이마가와와 후호조, 이 두 대국이 원조하게 되면, 이미 스와에 승산은 없습니다. 이렇게 하고, 스와, 우에이나지방을 손에 넣은 신겐은 드디어 시나노 최강의 남자인 무라카미 요시키요(村上義清)와 대립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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