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영주편;
가이의 범, 다케다 신겐의 수수께끼
역사는 우리가 직접 보고 들은 것이 아니기에, 많은 수수께끼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전국시대도 예외는 아닌데요, 오늘은 다케다 신겐의 수수께끼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1. 초상화의 수수께끼
다케다 신겐의 초상화로 널리 알려진 위의 초상화가 사실은 신겐의 초상화가 아니지 않나 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그는 39세에 출가해 삭발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위의 그림에는 아직 구렛나룻이 남아있지요. 그리고 옷이나 칼의 가문 문장이 다케다의 히시몬(菱紋)이 아니고, 아시카가나 하타케야마가 쓰던 후타츠비키료우몬(二引両紋)입니다. 게다가 후방에 있는 새는 노토(能登)의 새이지요. 그래서 상기의 이유들로 하타케야마 요시쓰구(畠山義続)의 초상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있습니다.
2. 다케다의 기마군단은 실재했는가?
흔히 신겐 하면 '풍림화산'의 붉은 기마대를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 기마대가 정말로 있었을까요? 다케다의 중신들 조차 많아야 200~300, 적으면 10~15기만의 기마대를 운용했습니다. 게다가 위의 사진처럼 큰 일본말은 없고 기껐해야 1미터가 될 작은 말이 주류였기에 쉽게 지치는 등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다케다의 기마대가 유명해졌을까요? 다케다의 근원지인 가이는 산악지대, 이곳의 말은 다른 곳의 일본마에 비해 사납고, 드셌습니다. 그렇기에 전국시대로서는 그나마 기능할 만한 기마대였던 것이기에, 이에 충격을 받은 다른 무장들이 다케다의 기마대의 지금의 이미지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합니다.
3. 상경과 사망의 수수께끼
보통 다케다 신겐의 상경(신겐의 상경)을 오다 노부나가 타도와 자신이 천하를 얻기 위해서 라고 생각합니다만, 여기에는 다양한 이설이 있습니다. 노부나가를 금족하고 그동안 도토미(遠江)와 미카와(三河)를 침공하려고 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미카타가하라 전투 이후 그의 움직임이 수상스럽기에 아무래도 상경이 목적이 아니었는가 합니다. 미카와를 제압하고 싶다면 문을 열어둔 채로 유즈케를 먹고 자버린 도쿠가와 이야에스의 하마마츠성을 내버려 둘리가 없었겠지요. 사망시에도 병으로 죽었는지, 총격을 맞았는지에 대해 이설이 있었으나, 병을 치료했다는 사료가 발견되었습니다.
4. 신겐의 진짜 유언은?
신겐의 유언이라 전해지는 것들이 몇개 있습니다.
三年秘匿
내 죽음을 삼년간 숨겨라
自分の跡目は孫の信勝で、勝頼は信勝が16歳になるまでの代理
내 상속은 손자인 노부카츠에게 하되, 16세까지 가쓰요리가 대리를 해라
源四郎。明日は瀬田に我が武田の旗を立てよ
겐시로, 내일은 세타에 우리 다케다의 기를 세우자
위의 유언과 두번째의 유언은 각각 자신의 죽음을 알리라는 것인지 숨기라는 것인지에 관해 모순이 있습니다. 게다가 맨 아래의 유언은 유언조차 아닌것 같아 보이지요. 당장에라도 상경할 기세가 보입니다. 무엇이 진짜 신겐의 유언인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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