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전투편;
전국시대의 전투는 어땠을까?
(2) 이동(移動)
행군(行軍)
전국시대의 길은 좁았습니다
전국시대 길의 폭은 좁았습니다. 이것은 적군의 침공을 막기 위해였지만, 자군의 출진 시에는 악영향을 주고 있었습니다.오다 노부나가는 길의 폭을 넓히고 길의 양옆으로 소나무나 버드나무를 심게 했다고 합니다.
행군중에 만약 깃대가 접히면, 위쪽이 접히면 길하다고 생각하고, 아래가 접히면 흉이라 여겨졌습니다. 수례나 말을 끌고 가는 한중간에 말이 울면 길한 징조였고, 말의 등자에 다리를 올린 다음에 울면 불길한 징조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이럴 경우, 활을 겨드랑이에 끼운 상태로, 복대를 다시 묶으면 액막이가 된다고 여겨졌습니다.
후나바시(船橋: 선교)
일본쪽 일러스트를 못구해서 ㅠ 암튼 이게 '배다리'인 '후나바시'입니다
군세가 큰 강을 건널 때, 후나바시를 걸쳐 놓기도 했었습니다. 후나바시와는 배를 옆으로 길게 늘어놓고 판을 올려 놓은 것입니다. 영주는 마을에 명령을 내려, 어업선이나 수운선을 모아 후나바시를 만들게 했습니다. 강가에 영지를 지니는 영주는 후나바시를 걸쳐 놓을 때, 그 지휘를 명령했받았습니다.
영주는 강가에 사는 가와다치(川立ち)들을 모아 후나바시를 만들게 했습니다. 가와다치들은 수운에 종사하고 있어 배를 공출 하고, 강의 깊이나 흐름의 속도를 알고 있었기에 어디에 후나바시를 걸쳐 놓으면 좋은가를 진언 했을 것입니다.
해상운송(海上輸送)
바다나 강이 있으면, 대량의 군세나 물자를 배로 전지에 보낼 수 있습니다. 바다에 접한 영주는, 해상운송과 해전을 위해서 해적중(海賊衆)을 고용했습니다. 다케다 신겐은 스루가를 영유 하고 즉석에서 해적중을 수중에 넣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뛰어난 해적중이어도 악천후에서는 항해를 하지 못하고, 목적지에의 도착이 늦는 일도 있었습니다.
해상운송은 매우 빨랐습니다
이런 해상운송은 특히 포위되어 있는 성에 효과적이었습니다. 오다 노부나가가 이시야마혼간지를 포위했을 때, 반노부나가 동맹의 일익이었던 모리의 수군이 군량을 지원하였기에 버틸 수 있었지요. 노부나가가 이를 막기 위해 일어난 것이 1,2차 키즈가와구 해전입니다. 한편, 하시바 히데요시의 츄고쿠대귀환의 성공을 그와 이미 동맹이었던 모리 수군이 관여한 것은 아닌가 하는 지적도 있습니다.
한편, 영주는 타국의 군선이나 상선이 해안에 표착했을 경우, 사공을 잡고 상세를 보고하도록 했습니다. 성 페리호가 난파되었을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배를 일본의 것으로 하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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