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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직업편

일본 전국시대 닌자편; 닌자는 언제 생겨났는가? 일본 닌자의 기원

일본 전국시대 닌자편;

닌자는 언제 생겨났는가? 일본 닌자의 기원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닌자


 닌자의 역사는 불교와 함께 6 세기에 전래한 병서 「손자」에서 시작합니다. 당시 동구권의 전략의 바이블인 손자에,


병사를 기용하는 것은 위험한 방법이니, 무분별하게 사용하지 말지어다. 지략은 올바른 방법으로 왕의 방법이다.


라고 있어, 이 '지략'을 일본 나름대로 재해석 한 것이 바로 '인술'이라고 합니다. 닌자를 처음 기용했다고 하는 것은 소가노 우마코(蘇我馬子)와 쇼토쿠 태자입니다. 우마코는 아마토노 아야노 아타이 고마(東漢直駒)를 사용해 스슌 천황(崇峻天皇)과 대립하는 호족들을 차례로 암살했다고 합니다. 한편, 쇼토쿠 태자는 신(秦)의 가와가쓰(河勝: 고우구쯔의 선조), 핫토리(이가 닌자의 선조), 오오토모세닌(大伴細人: 코우가 닌자의 선조) 등을 사용해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이러한 인술은 슈겐도(修験道)에 의해 한층 더 발전합니다. 일본 고래의 산악 신앙에 불교와 도교 등을 가미한 종교의 한 파인 슈겐도는 장술을 기본으로 독특한 방법들을 더해 관군과 전투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 장술이 점차 검술, 창술로 발전해 나갑니다. 이후에도 종파간 갈등으로 인해 수도자들의 전투가 빈번해


지고, 아베노 세이메이의 음양도가 창시 되자 음양술도 가미해 이 기술은 더욱 발전합니다. 그 중에서도 안마팔류(鞍馬八流)가 유명한데, 수많은 맹장들을 배출해 냈습니다.


코우가인술과 코우가닌자


한도우산(飯道山)에 있는 신사


 코우가의 중앙에는 해발 664 m의 한도우산(飯道山)이 있습니다. 이 산은 옛부터 천태종의 3대 수행 도장의 하나로 알려진 곳이었습니다. 즉, 많은 수도자들이 있어, 그들로부터 자연스레 각국의 정보가 모여 정보교환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전국 다이묘와의 연줄도 생기고, 시대의 흐름을 찰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기술을 가진이들이 서로의 기술을 교환해 나가며 발전해 닌자로 발전한 것인것 같습니다. 이때 이래로 300년 정도 지나야 본격적인 전국시대가 되므로 그 동안 코우가의 인술은 상당히 발전했을 것입니다.


 또한 코우가는 오미 남부의 요지에 있어 교토와도 가까워 이세 방면으로의 유통은 코우가를 경유하고 스즈카 고개를 넘어야 하는 정치, 경제, 군사적 요지였습니다. 이로 인해 여기를 노리는 세력이 많았지요. 따라서 스스로 마을은 스스로 지킬 수 있도록 독자적인 '군츄소(郡中惣)' 가 생겨났습니다.


이가인술과 이가닌자


시쥬쿠인(四十九院)


이가역시 코우가와 비슷한 이유로 닌자가 발달했습니다. 이가에는 교우키(行基)라는 승려가 만든 시쥬쿠인(四十九院)이라는 절이 있었습니다. 교우키는 일본에서 차를 처음 마신이가 아닌가 하는 설도 있지요.(무장의 취미, 다도) 이 절에는 미륵보살은 안치한 본당을 중심으로 49개의 수도자의 방이 둘러싸고 있어, 절이 만들어질 때부터 여러 사람에게 무술과 인술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이곳은 헤이안 말기 까지 다양한 닌자와 '연기의 가장자리(煙りの末)'라는 닌자집단을 통솔했습니다. 그리고 이가류 인술의 선조로 알려진 핫토리 이에나가(服部家長)도 이곳의 출신이었습니다.


 핫토리 이에나가는 단노우라 전투에서 전사했다고 하지만, 실은 살아남아 이가로 돌아와 성을 '치가치(千賀地)'로 고쳤다고 합니다. 수대 후에 한미쓰 야스나가(半三保長) 대에 일족과 함께 수도로 가서 쇼군 아시카가 요시하루를 섬기며 성을 '핫토리'로 되돌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얼마안가 쇼군에게 실망하고 미카와로 돌아가 마쓰다이라가를 섬기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그 유명한 핫토리 한조 마사나리(服部半蔵正成)가 태어납니다.


코우가와 이가의 관계 


코우가와 이가는 인접 지역에 위치하여 당연히 혈연 관계도 깊었고, 공통의 풍습, 전승도 꽤 많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부근에 상당히 많은 망명자가 숨어 들어와 세력을 불렸고, 산간에 위치한데다 큰 절의 비호하에 있어 수호나 고쿠시의 간섭을 받지 않을 수 있어 점차 닌자마을로 성장해 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