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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가문편

일본 전국시대 가문편; 배신의 아이콘 사이토 가문

일본 전국시대 가문편;

배신의 아이콘 사이토 가문



 일본 전국시대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바로 '하극상'입니다. 이 하극상의 대표격인 가문이 두 곳 있는데 한 군데는 호조 가문[각주:1]이고, 다른 한 군데가 바로 이 사이토 가문입니다.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탈취당한' 사이토 가문이지요.



니토나미二頭波




사이토 가문의 성립


 후지와라(藤原) 가문의 분가인 사이토 가문은 대대로 미노의 수호를 맡는 유서깊은 가문이었습니다. 오닌의 란(오닌의 난)에서는 사이토 시게요리(成頼)가 군세를 이끌고 서군에 서기도 하는 등 세력을 과시했었습니다. 하지만 서군에 참가해 교토에 가있는 동안 지방에서 정치를 하던 묘친(妙椿)의 세력이 성장해, 내란이 일어납니다. 시게요리에게는 다섯 아들이 있었는데, 그는 자신이 편애하는 넷째 아들에게 가독을 상속하려 했습니다. 그는 이런 마음을 이시마루 토시미츠(石丸利光)에게 터 놓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토시미츠는 그의 뜻을 실현시키겠다며 군세를 모아 후나다 전투를 일으킵니다.하지만 오다의 세력이 개입해 토시미츠는 패퇴하고, 롯카쿠 가문을 의지하게 됩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내분이 일어나 사이토 가문은 몰락하게 됩니다.



사이토 도산의 나라 훔치기



사이토 도산



 이런 혼란을 틈타 나가이 토시타카(長井利隆), 니시무라 칸쿠로(西村勘九郎)등이 등장해 실권을 잡게 되는데요.(사이토 도산 등장) 이 니시무라 칸쿠로가 다름아닌 사이토 도산입니다. 쿄로쿠 3년(1530년)때마침이라 해야할지, 도산[각주:2] 안배가 있었다고 해야할지 나가이 가문의 유력자가 연달아 죽어 버립니다. 그리고 도산은 나가이 가문을 장악해 스스로를 나가이 신쿠로 토시마사(長井新九郎利政)라 자칭하게 됩니다. 그리고 텐분 7년 수호대의 종가가 단절되자, 도산은 이를 이어 사이토 사콘노타이후(斎藤左近大夫)라 자칭하며 미노의 실권을 쥐게 됩니다.


 그는 이나바야마성으로 거성을 옮기고, 사이토 야마시로노카미 히데타츠(斎藤山城守秀龍)으로 바꿉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사이토 요리요시(頼芸)를 제거하려 합니다. 이를 눈치챈 요시노리는 에치젠의 아사쿠라 가문을 끌어들여 이를 막으려 합니다. 하지만 이미 미노의 권력은 도산에게 넘어간 이후였기에 그는 하릴없이 쫓겨나고 맙니다. 그는 오다 노부히데의 원조를 얻어 미노를 회복해 보려 합니다.(이노쿠지 전투) 이에 도산은 일단 화의를 맺어 요리요시의 아들인 요리즈미(頼純)를 인질로 받고 오오가 성(大桑城)을 내어줍니다. 하지만 바로 요리즈미는 죽고[각주:3] 도산이 오오가성을 공격해 미노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 나라 훔친 이야기는 그의 아버지와 그의 2대에 걸친 이야기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미노의 살무사는 두 명이었다



사이토 요시타츠 초상화



 이런 사이토 도산의 하극상을 보고 그를 '미노의 살무사'라 칭하게 됩니다. 하지만 미노의 살무사는 도산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도산의 아들인 요시타츠(義龍)는 원래 토키 요리요시(土岐頼芸)의 아들로, 도산이 출세를 위해 자신의 아들로 인정하고 길렀었습니다. 게다가 도산이 자신의 핏줄인 두 아들을 귀여워 하기 시작하자, 그는 동생들을 죽여 버립니다. 게다가 배신을 거듭해 인망이 없는 도산과는 달리 요시타츠는 많은 가신이 따르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는 아버지에게 하극상을 일으킵니다.(니가라가와 전투) 미노의 살무사는 두 명이었던 것입니다. 죽기 전에 도산은 요시타츠를 인정했다고 하는데, 그는 꽤나 훌륭하게 미노를 다스렸습니다. 하지만 그가 병사하고, 14살 밖에 되지 않은 그의 아들 타츠오키(龍興)가 다이묘 직에 오르며 사이토 가문의 운명이 휘청이기 시작합니다.



사이토 가문의 몰락



사이토 타츠오키



 타츠오키의 성장을 기다려 주기에 당시의 상황은 급박했습니다. 오와리의 오다 노부나가가 승승장구하며 미노로 진격해 왔기 때문입니다. 사이토 가문은 도산, 요시타츠 두 명의 훌륭한 다이묘로 인해 매우 강성했기에 노부나가를 잘 막아내었으나, 거듭된 침공에다 노부나가의 조략[각주:4]을 통해 사이토 가문을 흔들어 갑니다. 심지어 거성인 이나바야마성을 가신인 다케나가 한베에가 점거하는 사건까지 일어납니다.(이나바야마성 점거) 그 뒤에 연이은 오다의 공격으로 결국 거성인 이나바야마성이 점령되고(이나바야마성 공방전


그후, 타츠오키는 교토에서 미요시 3인중과 손잡고 노부나가의 상경을 막으려 하거나아사쿠라 가문에 몸을 의탁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노부나가가 에치젠 정벌을 할때 토네자카에서 전사하고 맙니다. 사이토 도산이 '사위인 오다 노부나가에게 미노를 물려준다.'라는 유언장이 노부나가의 미노 공격의 명분이 된 걸 보면 도산은 죽어서도 자신의 아들을 배신한 것이 아닐까요?

  1. 이 호조가문은 전국시대의 후호조 가문을 의미합니다. [본문으로]
  2. 이름을 너무 자주 바꾸니 혼란을 막기 위해 도산으로 통일하겠습니다 [본문으로]
  3. 도산이 독살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본문으로]
  4. 상대방 가신을 배신하게 하는 책략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