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임진왜란이 종결하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임진왜란이 종결하다


 게이쵸 3년(1598년) 11월 20일, 끝까지 주둔하던 시마즈 부대가 철퇴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두번째 일으킨 한국 침략 정유재란(게이쵸의 역)이 종결 했습니다.


 호조의 오다와라성을 점령해(호조가 멸망), 오슈의 영웅 다테 마사무네를 부하로 삼아(오다와라성에서 히데요시를 만나다) 드디어 천하를 수중에 넣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무모한 조선 침략을 개시합니다. 분로쿠 원년(1592년)부터 분로쿠 2년에 걸친 제1차 한국 침략, 임진왜란(분로쿠의 역)이 휴전한 뒤 강화회담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강경한 히데요시는 14만의 대군을 다시 조선에 보내 침략을 개시합니다.


 명의 원군뿐만아니라 조선 각지에서 발발하는 의병에 일본군은 고전을 면치 못합니다. 일본에서는 당시 전투는 다이묘와 다이묘간 일어나는 것, 분명히 백성들에게 피해는 갈지라도 어느 다이묘가 지배를 하더라도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조선의 민중들은 달랐습니다. 아무튼 정유재란을 일으킨 일본군은 경상도에서 상륙해 두 패로 나누어져 북상하였습니다. 도도 다카토라,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수군이 거제도에서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을 대신해 군대를 이끌던 원균을 대패시키고, 서군은 남원성을 점령하며 파죽지세로 진군합니다. 가토 기요마사는 울산에 성을 구축하려 하나, 명의 포위에 의해 위기에 봉착합니다.


히데요시가 사망해 버립니다


 모리 히데모토가 게이쵸 3년(1598년) 1월 4일 원군을 이끌고와 명군의 포위를 풀게 되었지만, 이미 의병, 조선군, 명군에 의해 일본군은 각지에서 패배를 거듭합니다. 정확히 이 때 후시미성에서 요양 중이던 히데요시가 죽어 버렸습니다. 히데요시가 임명했던 오봉행과 오대로는 논의를 거듭해 히데요시의 죽음을 숨긴 채로 정전을 교섭합니다. 그들은 하나 둘 조선에서 퇴각을 시작하고, 그런 그들을 이순신 장군은 노량해전에서 통쾌하게 무찌르고 전사합니다. 게이쵸 3년(1598년) 11월 25일 정유재란은 끝을 맞이했습니다.


 이때 일본에서 전공은 자신이 직접 적의 귀나, 코를 잘라와야 했던 것으로 그들은 퇴각하는 와중에도 자신의 전공을 증명할 것들을 지니고, 조선의 발달된 문화재를 약탈하고, 문화인들을 납치해 일본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중에는 현대에 유명한 도공인 이삼평씨도 있고, 일본에 끌려간 조선의 미녀, 오타아 쥬리아(오타아 쥬리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전공을 보고받아야 할 히데요시는 이미 죽은 상태, 게다가 평화를 찾은 일본에는 용감무쌍한 무장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들은 자신들의 노력에 비해 얻어지는 것이 없는 상태에 큰 불만을 가졌고 천하를 쥐려는 도쿠가와 이야에스는 이 균열을 이용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