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나가시노 전투(1) 나가시노성 공방전, 시작
덴쇼 3년(1575년, 다케다 가쓰요리(武田勝頼)가 미카와 나가시노성(長篠城)의 오쿠다이라 노부마사(奥平信昌)를 포위했습니다.
나가시노성의 위치
아직 가이의 호랑이 다케다 신겐이 건재했을 때에 나가시노 성주 오쿠다이라 노부마사는 아버지와 함께 다케다에 신종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 덴쇼 원년(1573년) 신겐의 죽음을 계기로 등을 돌리게 됩니다 신겐의 죽음은 당분간 공표되지 않았지만, 그때 까지 파죽지세로 상경하던 다케다군이 노다성공방전 뒤로 갑자기 철퇴를 개시한 일에는(노다성 공방전), 누구라도 이상하게 생각해 그 불신감과 동요는 가신들에게도, 그리고 주위의 전국 무장에도 퍼져 그런 중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포위를 받고 있던 미카와측의 최전선 위치에 있는 나가시노성이 개성 됩니다.
너무 쉽게 점령당한 것으로, 나가시노 성주는 신겐의 뒤를 이은 다케다 가쓰요리로부터 도쿠가와와 내통했다고 의심됩니다. 이 때, 세트로 내통을 의심된 것이 노부마사의 아버지 였는데, 사실 그는 진짜로 내통하고 있었습니다. 이야에스가 그에게 신겐의 죽음의 진위를 묻자, 그는 정황상 맞는 것 같다고 대답했지요. 그리고 뒤에 이야에스의 장녀 카메히메와 장남 노부마사를 혼인시켜 완전히 도쿠가와 측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야에스는 오쿠다이라가에 나가시노성을 맡기게 됩니다.
오쿠다이라 노부마사 초상화
가쓰요리는 이 상황에 매우 분노 하지요.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활발한 정복 전쟁을 벌였습니다. 이에야스의 거성 하마마츠성 근처까지 진군하거나, 다음해 덴쇼 2년에는 오다 노부나가의 미노 아케치성을 점령하고, 아버지도 점령 할 수 없었던 다카텐진성(高天神城)도 함락 시켰습니다. 이윽고 덴쇼 3년(1575년) 가쓰요리는 1만 5,000이라고 하는 대군을 인솔해 남하를 개시, 이 나가시노성을 포위했습니다. 지키는 오쿠다이라 노부마사의 군세는 250명, 여기다 도쿠가와에서 파견된 용병을 더해도, 약 500명 정도였습니다.
나가시노성 공방전
공격이 시작되고 얼마되지 않아 나가시노성의 야큐우몬(野牛門)까지 쳐들어온 다케다군의 맹공을 성벽에서 암석을 떨어뜨리거나 활로 힘겹게 저항해, 어떻게든 막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분전해도 30배의 병력차이는극복하기 어렵고,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성 안까지 들어온 다케다군에 식량고가 파괴되어 버립니다. 이로 인해 장기적 농성이 불가능해진 나가시노성에서, 토리이 쓰네몬 가츠아키(鳥居強右衛門勝商)라는 전령이 뛰어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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