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나오시게, 5배의 오오토모를 유린하다 이마야마 전투
겐키 원년(1570년) 오오토모 소린(大友宗麟)의 명령으로 류조지 다카노부(龍造寺隆信)의 사가성(佐嘉城)을 포위한 오오토모 치카사다(大友親貞)의 군에, 류조지의 부하 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直茂)가 기습해 오오토모군을 격파한 이마야마 전투(今山の戦い)가 있었습니다.
보통 전국시대하면 일본 혼슈의 이야기를 떠올리기 쉽지만, 시고쿠와 큐슈에서도 혼란은 번져있었습니다. 큐슈지방의 전국시대역사는 '큐슈 삼국지'라고도 합니다. 사츠마의 시마즈 요시히사(島津義久)와 분고의 오오토모 소린(大友宗麟) 그리고 히젠의 류조지 다카노부(龍造寺隆信)가 각각 한 축을 담당하며 큐슈의 세력균형을 아슬아슬하게 맞추고 있었습니다. 원래 큐슈 북부를 짊어지던 쇼니(少弐)가의 부하인 류조지, 게다가 분가의 출신인 다카노부는 소린이 보기에는 신흥 세력 중의 하나에 불과했습니다. 겐키 원년(1570년) 결국 소린은 다카노부의 본거지 사가성에 침공을 개시합니다.
사가성 공방전 전황도
원래 최전선에 잘 서지 않는 소린은 이번에도 오오토모 치카사다를 총대장으로 세워 사가성을 공략하게 합니다. 이 시점에서 북 큐슈에서는 최대의 세력을 가지는 오오토모가는 6만이라고 하는 대군세를 이끌고 사가성을 포위합니다. 한편 농성하는 류조지의 병력은 불과 3,000이었습니다. 게다가 오오토모군은 급할 것이 없어 시종 소규모 전투만 하고 있었지요. 이마야마에 본진을 둔 치카사다가 진군을 하지 않는 이윤은 우습게도 점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호기가 아니라는 결과가 나오자, 전투를 주저한 것이지요. 무려 5배나 되는 군세로도 길보가 없자, 소린은 치쿠고까지 이동해, 총공격을 개시하라 명령합니다. 그리고도 시간이 좀 더 흐른 뒤, 치카사다는 드디어 공격을 각오하고 전승 축하연을 미리 치른 뒤 성을 공격하러 갑니다.
이런 오오토모군의 방심을 놓치지 않았던 것이, 류조지 중신 나베시마 나오시게 였습니다. 그는 다카노부에 기습 작전을 제안합니다. 지나치케 대담한 작전에, 처음은 맹반대하던 다카노부였지만, 결국 이 작전의 결행을 허가합니다. 오오토모군의 연회가 시작된 밤에, 나오시게는 불과 500명의 군사를 따르게 해 사가성을 나와 은밀히 총대장 치카사다가 있는 본진으로 향합니다. 총원 6만이라고는 해도 광범위하게 병력을 배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본진에는 불과 수천의 군사 밖에 없는 것을 알고 있던 나오시게는 본진 이마야마의 배후에 몸을 숨기고 있다,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연회 뒤에 자고 있던 오오토모군에 습격을 개시했습니다.
나베시마 나오시게 초상화
뭐가 뭔지 모르고 혼란하는 사이에 나오시게는 치카사다의 목을 베고 그것을 천명합니다. 총원 6만이라지만, 고쿠진들이 대부분으로, 진심으로 오오토모에 충성을 맹세한 군사도 아닌 오합지졸이여서, 무너지기 시작하자 사상누각과 같이 순식간에 무너져 버립니다. 이렇게 해서 이마야마 전투는 손쉽게 류조지의 승리로 끝납니다. 소린은 이후도 당분간 사가성을 계속 포위하나 딱히 무엇을 하진 않다가 철퇴합니다. 히젠의 곰이라고 불린 류조지 다카노부는 만년에 술에 빠져 가신에게서 신뢰를 잃고, 시마즈와 오키타나와데(沖田畷) 전투로 전사한뒤 류조지가는 단번에 세력을 잃어, 이 전투에서 대활약한 나베시마가 뒤를 이어, 에도시대에는 나베시마가 이곳을 지배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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