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인물편/여성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신앙을 끝까지 관철한 여인, 호소카와 가라샤

시간의잡동사니 2012. 12. 25. 18:00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신앙을 끝까지 관철한 여인, 호소카와 가라샤



호소카와 가라샤(細川ガラシャ)는 아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의 딸로, 호소카와 타다오키(細川忠興)의 정실입니다.



호소카와 가라샤(細川ガラシャ)



그녀는 아케치 미쓰히데의 삼녀로 덴쇼 6년(1578년)에 오다 노부나가의 권유로 호소카와 타다오키에게 시집가게 됩니다. 남편과의 사이는 나쁘지 않았지만 혼노지의 변이후 어쩔 수 없이 역적의 딸인 그녀를 탄고의 미토노(味土野)에 유폐하게 됩니다. 이때 그녀를 지지해 준 것은 시녀들과 키요하라 마리아(清原マリア)였습니다.


 덴쇼 12년(1584년) 히데요시가 용서해 그녀는 다시 호소카와가로 돌아옵니다. 그전까지 그녀는 불교를 믿었지만, 남편이 다도를 배운 '센노리큐(千利休)'의 동문 타카야마 우콘(高山右近)이 자주 놀러와 타다오키에게 크리스트교에 관해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타다오키는 자신이 들은 것을 아무 생각 없이 아내에게 말했지요. '신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 '이웃을 사랑해라'는 크리스트교의 가르침은 가라샤의 마음에 큰 파문을 낳습니다.



자신의 신념을 관철한 성녀



 그러한 크리스트교의 교리를 들으며, '타마'는 점차 그 종교에 매료되어갔지만, 남편이 엄격하게 반대해 교회는 커녕 외출조차 허락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덴쇼 14년(1587년) 히데요시의 명령에 의해 타다오키는 큐슈 정벌에 출진하게 됩니다. 이 틈을 타 그녀는 교회를 찾아가 세례를 받게 된다. 정확히 히데요시가 바테렌추방령을 발포할 무렵의 일입니다. 세례명인 '가라샤'는 라틴어로 '신의 자비심'이라는 뜻 입니이다. 그후로는 세례받은 것이 들통나 외출조차 막혔기에 서적으로 신의 가르침을 읽었습니다.

 

정벌이 끝나도 오사카로 돌아온 타다오키 아내의 행동을 알자마자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주군인 히데요시가 금지한 종교를 믿다니요! 그래서 그는 그녀의 목에 단검을 들이밀고 개종하라며 몰아부쳤지만, 가리샤는 고집을 피우며 양보하지 않으려했습니다. 그러자 타다오키는 가라샤와 함께 개종한 시녀의 귀나 코를 잘라 쫒아낸다고 하는 잔혹한 행위까지 해버렸으나 그녀는 완고했습니다. 그녀는 선교사에게 쓴 편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박해를 받는다 해도, 저의 신앙심은 변함없을 것입니다.' 그녀는 이혼을 원했지만, 크리스트교에서 이혼을 인정하지 않았기에 고통스러워 했다고 합니다. 선교사는 '어려움에 맞서 싸워야 덕이 닦여집니다'라며 그녀를 달랬습니다.


 히데요시가 세상을 떠나고 권력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차지하게 됩니다. 그런 이에야스에게 대항한 이가, 이시나 미츠나리(石田三成), 우에스기 카게카츠(上杉景勝)였습니다. 이때 이에야스쪽에 가담한 타다오키는, 세키가하라 전투 직전에 치뤄진 우에스기'토벌을 위해 토호쿠로 원정을 가있었습니다. 그무렵, 가라샤 등 여러 다이묘들의 아내들은, 오사카성 아래의 무가저택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미츠나리 그 아내들을 인질로 삼으려합니다. 거기서 가장 첫번째 표적이 된 것이 가라샤였습니다. 



죽음을 맞이하는 가리샤


 

 저택을 병사들로 포위한 사자는 가라샤의 신병을 인도해 줄 것을 요구해, 당황하는 가신을 앞에 두고 그녀는 잠시 머뭇거렸습다. 무가의 여성으로서는 이곳에서 자살해야 옳으나 크리스트교에서 자살은 범죄이지요. 결국 그녀는 가신에게 나기나타를 주며 찔러 달라고 명합니다. 향년 38세 그녀는 자신의 두 신념을 저버리지 않고 목숨을 잃습니다. 그리고 가신들은 저택에 불을 질러 버리지요. 이에 충격을 받은 미츠나리는 오히려 역효과라는 생각에 작전을 그만둡니다. 그녀의 희생으로 목숨을 건진 것입니다.


 그녀의 이런 이야기는 예수회 신부들에 의해 본국으로 전달되어 '강한 여성...이름하여, 단고왕국의 여왕 그라지아(強き女...またの名を、丹後王国の女王グラツィア)'라는 라틴어 연극으로 만들어집니다. 몽매하고 야만적 인 군주인 남편의 악행과 비도를 견디면서도 신앙을 관철 해, 최후는 목숨을 바쳐 폭군을 회심 시켰다는 기독교 신자를위한 교훈적인 줄거리를 가진 연극이지요. 이 연극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공주들에게 특히 인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정치적 이유로 타국에 시집가는 가라샤을 자신의 처지와 거듭하여, 온갖 고난에도 자신의 신앙을 관철한 고상함에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어쩌면 동양인을 다룬 최초의 연극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