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가문편;
센고쿠 다이묘는 어떻게 출현했을까?
무로마치 말기, 즉 전국시대의 무가사회에서는 실력에 따른 하극상의 풍조가 만연했습니다. 중앙에서는 무가를 이끌던 쇼군 아시카가 가문은 이미 힘을 잃고 영락해 버렸습니다. 또한 관동 지방에서도 관동 쿠보 아시카가를 몰락하고 있었습니다. 전통적인 권위가 흔들리며 이들을 없애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풍조가 서서히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것이 다름아닌 센고쿠 다이묘(戦国大名)입니다.
전국시대 다이묘들
슈고(수호)에서 센고쿠 다이묘로
사츠마의 시마즈, 코난의 롯카쿠, 와카사의 다케다, 스루가의 이마가와, 가이의 다케다는 슈고 다이묘(守護大名)가 센고쿠 다이묘로 발전한 경우입니다. 슈고란 일본의 막부 시대에 쇼군에 의해 지방에 파견되는 지방관을 말합니다.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일본 지방 통치의 강화를 위해서 만든 제도로, 덴노가 임명한 고쿠시(国司)들을 대체하며 중앙 집권화를 이루기 시작합니다. 전국시대가 되며 전통적인 권위가 흔들리자 슈고의 힘이 강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고쿠시에서 센고쿠 다이묘로
하지만 고쿠시들이 항상 힘이 없어 당하기만 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이세의 키타바타케, 히다의 아네코지, 토사의 이치죠와 같이 고쿠시에서 센고쿠 다이묘가 된 희귀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보통 이들을 일컬어 '산 고쿠시(三国司)'라 칭하기도 합니다.
슈고다이(수호대)에서 센고쿠 다이묘로
에치젠의 아사쿠라, 에치고의 우에스기(나가오) 1, 이즈모의 아마고같은 경우는 슈고다이(守護代)에서 센고쿠 다이묘가 된 경우입니다. 슈고다이는 슈고가 교토 등지에 나가 있어 영지를 배울 때, 그 영지를 통치하던 직책입니다. 범이 없는 굴에서는 여우가 왕이라고, 이들은 지방에서 세력을 급격히 불려나가, 하극상의 풍조가 있는 전국시대에서는 명목뿐인 상관 슈고를 제치고,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무장에서 센고쿠 다이묘로
오와리의 오다, 비젠의 우키타와 같은 경우는 슈고의 가로또는 슈고다이의 중신에서 시작해, 상관들을 무찌르고 힘을 길러 센고쿠 다이묘가 된 경우입니다. 시작은 일개 무장에 지나지 않으나, 점차 세력을 불려 자신의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토호에서 센고쿠 다이묘로
아키의 모리, 미카와의 도쿠가와(마츠다이라), 코호쿠의 아자이, 토사의 쵸쇼카베와 같이 일개 토호에서 발전해 센고쿠 다이묘가 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모리 가문은 요시다에서 3,000관을 지행(치교)로 지닌 지도우(地頭)에 지나지 않았고, 마츠다이라 가문은 거의 멸망한 것을 인질로 잡혀갔던 타케치요가 이야에스로 개명하고 다시 일으켰습니다.
무명 인물에서 센고쿠 다이묘로
야마토의 마츠나가 히사히데, 미노의 사이토 도산, 사가미의 호조 소운 2은 전통적 지위와 상관없이 자신의 지능, 재치와 칼 한자루를 들고 일어나 센고쿠 다이묘가 된 예입니다. 이들의 활약상을 일컬에 '전국 삼 효웅'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센고쿠 다이묘의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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