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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히사히데와 미요시가의 몰락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히사히데와 미요시가의 몰락


 미요시 형제에게는 한 가지 일화가 있습니다. 상자안에 들어 있는 풀벌레의 소리를 들은 후유야쓰가 형인 나가요시에게 '풀벌레조차 이렇게 소중히 기르면 장수하는데, 형은 사람의 목숨을 너무 허술하게 해.'라고 하자, 상냥한 동생을 귀여워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하지만 나가요시도 결코 잔악한 이는 아니었습니다. 전국시대였기에 적의를 나타내는 이에게는 가차없었지만, 그는 그를 암살하려고까지 했던 쇼군이 화해를 요청하자 바로 인정하기도 합니다. 


미요시 나가요시아타기 후유야쓰



  그러나 수도에 돌아간 쇼군 요시테루는 불과 1년후에 스미모토와 결탁해 나가요시를 배제하려 합니다. 나가요시는 요시테루를 도운 아쿠타가와 쥬우로우(芥川孫十郎)를 항복시켜 빼앗은 아쿠타가와성(芥川城)을 거성으로 하고 가신 마츠나가 히사히데(松永久秀)에 교토의 정치를 맡깁니다. 그 때 나가요시는 셋츠, 이즈미, 야마시로, 탄바, 아와지, 하리마, 아와, 사누키의 8개국을 점령한 관동의 호조에 필적하는 관서의 왕자였습니다. 이름뿐인 쇼군은 이에 저항할 수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5년 후에 다시 화해를 신청해 온 요시테루를 용인해 또 다시 쇼군으로 교토에 맞아들입니다. 이제 요시테루와 스미모토는 단념하고, 그를 인정하게 됩니다. 그런 두 사람을 본 나가요시는 두명과 화목한 관계가 된 것에 기뻐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하니, 그의 인품을 알 수 있습니다. 



마쓰나가 히사히데



 하지만 그의 이런 인품이 발목을 잡게 됩니다. 에이로쿠4년(1561년) 가신 마츠나가 히사히데와 함께 머무르고 있던 아리마 온천에서 둘째 남동생 가즈마사가 탕치중에 돌연 사망합니다. 매독에 의한 병사인지, 낙마사인지, 또는 전국시대 3 효융 중 하나인 히사히데의 계략인지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불과 1년 뒤 에이로쿠5년(1562년)에는 이즈미 쿠메다(久米田)에서 하타케야마 타카마야(畠山高政)와 싸우고 있던 둘째 동생이 전사해 버립니다. 타카마야는 이전 카와치의 수호로 나가요시에게 지고 패주한 인물입니다. 그때 죽일 수 있었지만, 추방으로 끝낸 그에게 오히려 동생의 죽음으로 보답한 것이지요.  이 시점에서 큰 힘을 가지고 있던 나가요시는 즉시 전쟁해 승리합니다. 


 한층 더 에이로쿠6년(1563년) 나가요시의 장남 미요시 요시오키(三好義興)가 22세의 젊음으로 돌연 죽음을 맞이 합니다. 매년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 머리속이 복잡했던 나가요시는 에이로쿠7년(1564년) 남동생 후유야쓰에 모반의 혐의를 알게 되어 그를 이이모리산성에 불러, 죽여버립니다. 그가 한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잔악한 일이었지요. 물론, 얼마 뒤에 그것은 근거없는 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으로, 그는 폐인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2개월 후 불과 43세에 목숨을 잃고 맙니다. 미요시가의 불가사의할 정도의 비극은 후에 하사히데의 계략이었다는 설이 지배적입니다만, 그의 상냥했던 성격과, 그 성격과는 어울리지 않게 지나치게 커진 세력 등이 그를 몰락의 길로 몰아넣은 것은 아닐까요? 와카를 좋아했다던 그가, 혼란의 전국시대 대신 좀더 평화로운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훌륭한 예술가가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