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쵸쇼카베 모토치카, 토사를 통일하다
시만토가와 전투
덴쇼 3년(1575년), '토사의 걸물'이라는 이명을 가지는 쵸쇼카베 모토치카가, 칸노우라성을 공략해, 토사 통일을 완수했습니다.
당시 쵸쇼카베의 영지
토사 서부에 있는 하타군은 가마쿠라 시대부터 문신 이치죠가 소유의 장원이었습니다. 오닌 원년(1467년)에 발발한 오닌의 난에 교토가 불태워져 시가전에 진저리가 난 이치죠 노리후사(一条教房)는 교토를 탈출해, 이곳으로 이주했습니다. 이윽고 이치죠가는 하타군의 나카무라성(中村城)을 거성으로 삼는 전국 다이묘가 됩니다. 원래 덕망이 자자했던 이치죠가는 이곳에서도「문신 영주」라고 불리며 계속 존경 받고 있었습니다. 5대째의 이치죠 카네사다(一条兼定)의 무렵, 이 이치죠가도 전국의 물결에 삼켜지게 됩니다. 이 즈음에는, 그 본거지를 오카 오코우성(岡豊城)으로 옮기고 있었지만, 거듭되는 실정에 가신으로부터의 신뢰를 잃고 그 지위가 요동치고 있었습니다.
이치죠 카네사다(一条兼定)
숙명의 라이벌인 모토야마를 넘어뜨리고 아키성을 공략해, 토사 중앙부를 지배하고 수습한 쵸쇼카베 모토치카는 시고쿠 통일을 꿈꾸며 다른 지방으로 눈을 돌립니다. 덴쇼 2년(1574년), 카네사다는 불만이 폭발한 노 가신들에 의해 은거라는 형태로 분고에 추방되어 버립니다. 이 기회를 놓칠 쵸쇼카베가 아니었습니다. 사실 이 카네사다는 모토치카가 공격한 아키 쿠니토라(安芸国虎)의 매부로, 그와 함께 초소카베를 공격하려 한 일도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것이 모토치카의 책략에 의한 것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쵸소카베 모토치카는 즉시 쫓겨난 카네사다의 뒤를 이어 당주가 된지 얼마 안된 그의 장남 타다마사(内政)와 자신의 딸을 결혼시킵니다. 그리고 타다마사를 오코성(岡豊城)밖에 살게 하고 실권을 빼았고, 나카무라성에는 남동생 키라 사카치다(吉良親貞)를 보내 완전히 이치죠가를 빼앗아 버렸습니다. 그러자 카네사다도 입다물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신부의 친가 오오토모가나, 이요의 무장들의 지원을 받아 타도 초소카베의 기치를 내걸어 군사를 일으켜 시만토가와(四万十川)의 서쪽으로 진을 쳐, 해자를 파고 망루를 구축하기 시작합니다. 이 때의, 이치죠의 군세는 3,500이었습니다.
이치료우소쿠(一領具足)
이것을 알게된 모토치카는, 즉석에서 군사를 모았습니다. 그 수는 7,300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토사의 '이치료우소쿠(一領具足)'입니다. 잇치료우소쿠는 투구와 갑옷이라고 하는 의미로 평상시는 농업에 힘쓰고 있는 농민입니다만, 만일의 경우에 그 투구와 갑옷만을 가져 즉석에서 참전하는 토착의 무사단의 일을 말합니다. 이런 식으로, 때가 되면 순식간에 군단이 되는 것이 강점이었습니다. 시만토가와를 사이로 적대시하는 양군의 긴장의 실은 이윽고 초소카베군이 강을 건너기 시작하고 시만토가와 전투가 개시하며 끊어지게 됩니다. 강을 건너지 못하게 하려고 일제히 진군 하는 군사를 향해 활과 화살을 적을 향해 발사하는 이치죠군의 뒤로 초소카베군의 별동대가 상류를 거쳐 진군하기 시작합니다.
이에 이치죠군은 군을 두 패로 나누어 반은 상류의 부대에의 대응하게 하나, 이것은 모토치카의 양동 작전이었습니다. 적은 군사를 한층 더 분산시킨 이치죠가에 여유를 가지고 대항한 초소카베군은, 거뜬히 시만토가와를 건넜습니다. 동요한 일조군은 완패해, 2백명이 넘는 사망자를 내고 패주 해 버렸습니다. 게다가 이 기세를 탄 모토치카는 덴쇼 3년(1575년) 7월, 칸노우라성(甲浦城)을 공략해, 토사의 통일에 성공합니다. 이치죠가는 여기서 멸망하고, 그 것을 디딤돌로 쵸쇼카베 모토치카는 시고쿠 통일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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